마커스와 제니, 그들은 내가 라싸의 숙소에서 출발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만났다. 짐이 달려있는 자전거를 보고 다가왔다. 마커스는 중국계 말레이시아계 호주인이고 제니는 인도계 호주인이었다. 처음에 마커스는 한국인인줄알고 말은 안했지만 반가워 했다. 굉장히 유창한 영어가 조금 의심스럽긴 했는데. 알고보니 호주인이었다.
그곳 라싸에서부터 출발하여 카트만두까지 갈거라고 했다. 사실, 그 전날 이탈리아 남자 두명을 같은 숙소에서 만났었다. 그들 또한 카트만두로 향한다고 했다. 또, 그 전날에는 한국 ‘호흡곤란’ MTB자전거 동호회에서도 주행한다고 했었다. 그들에게는 황송한 대접을 받으며 밥까지 얻어먹었다. 그만큼 그곳에는 카트만두로 향하는 자전거 여행자가 많았고, 그 말인 즉 경치가 좋고 비교적 길이 좋다는 것이다.
마커스와 제니를 시가체 숙소에서 다시 만났다. ‘장’ 아저씨를 먼저 보내고 시가체에 4일이나 더 묵었다. 시가체에는 여행자들이 갈만한 숙소가 많이 없어 그들도 거기에 오게끔 되어 있었다. 만남은 거의 필연적이었던 것. 어느날 외출을 하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라싸에서의 만남은 대단히 짧은 것이어서 대충 그들의 존재만 기억할 뿐이었다. 그 때는 중국계 말레이시아계 호주인과 인도계 호주인이라는 특이함 때문에 알아볼 수 있었고 서로 대단히 반갑게 인사했다.
“Did you pass the karo-la? It was so~ hard, but the lake was awesome, right?”
(카로라 넘었어? 굉장히 힘들었지, 그래도 호수는 죽여줬어, 그치?)
“I didn’t pass any pass, and didn’t see any lake. where was it?”
(고개같은거 넘은 적 없는데, 그리고 호수도 본 적이 없어. 어디있어?)
‘얌드록쵸’(고산호수)를 보기위해 5000여 m의 카로라를 넘던 얘기를 허겁지겁하며 어떻게 넘어왔냐고 물어왔지만 나는 그들로써는 황당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새로 난 길로, 그들은 오래된 길로 온 것이었다. 그 때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 어떤 길이 내가 가야하는 길인지도 모른채 그냥 가지는 대로, 흘러가는대로 온 나는 길이 틀리기도 일쑤이고 그러니… 쯧쯧…
시가체에서 출발하는 날이 같아 함께 움직이자고 했다. 호주인이지만 호주 오른쪽 아래의 작은 섬, 타즈메니아에서 와서 그런지 영어 발음이 굉장히 어려웠다. 차라리 영국인 발음이라면 대충알아듣겠지만 입안에서 머뭇머뭇하는 듯한 그들의 말. 대화하는데 다소 힘들었다. 그들은 단기 여행이기 때문에 짐도 나보다 훨씬 적었다.
나의 반정도 밖에 안되는 짐에다가 3년 이상의 MTB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600m 정도 되는 뒷산 고개를 넘는데도 낑낑거리던 나였기에 그들과 나의 주행속도는 당연히 차이날 수 밖에 없었고, 또, 사진을 도중에 찍느라 거리차이는 더 많이 나게 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좋은 친구로써 대해주었다. 쉬는 시간에는 거리차를 좁히기 위해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서로의 간식도 나눠먹으며 마커스가 수시로 내뱉는 말 ‘오썸’(멋지다, 죽인다!)를 따라하며 동의했다. 동행한 첫날 같은 곳에서 야영을 했다. 그들이 점심을 먹던 식당에서 사가지고 온 굵은 면과 내가 만든 밥으로 함께 저녁을 떼웠다. 고요한 분위기에 취해 제니는 책을 읽고 마커스는 하모니카를 불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제니가 마커스에게 생일선물로 준 것이라고 했다. 어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는 마커스. 한치의 울림도 없는 그 넓은 벌판에서 그의 하모니카 소리는 바람이 되는 듯 했다. 그 분위기에 취해 ‘아~ 좋다~’.
그들은 의사였다. 마커스와 제니는 둘 다 의사란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지만 호주에서는 그 나이에 의사도 할 수 있었나보다. 휴가를 7주를 받아서 이곳에 왔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휴가가 있을 수 있냐고 놀라면서 따지자. 보통 그렇게 받는단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1년에 정해진 휴가가 20일가량 되지만 눈치가 보이는 직장이 대부분 아닌가. 휴가를 쓰지못하고 수당을 받는 것이 보통인 우리나라. 대단히 부러웠다.
저녁이 되자 휘익~휘익~하며 바람들이 텐트주위로 지나다녔다. 날짜로는 한여름에 속하는 8월이었지만 햇님이 서쪽하늘로 들어간 이후에는 겨울같이 추웠다. 텐트안에서 두꺼운 침낭을 덮고는 미소를 지으며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야. 라고 느끼며 서서히 잠들었다.
한밤중에 천둥소리가 많이 들렸다. 소리 때문에 잠을 깼더니 바깥에서 누군가가 형광등으로 장난하는 것처럼 깜빡깜빡거렸다. 그러자 곧 비가 쏟아졌다. 전날 비오는 것을 대비해서 텐트주위로 준비해간 삽으로 고랑을 파려고 했었다.(그렇다! 나는 쇠삽도 가져갔었다!!) 땅이 딱딱해서 파다가 이렇게 맑은 날에 설마 비가 오겠어 했는데, 정말 비가 오는 것이다. 훌륭한 한국산 텐트라 설마 비가 들어오겠나 했다. 그리곤 다시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돌아누을 때 닿은 손에 물이 묻은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보니 네 모서리와 입구쪽에 물이 흥건히 고여있었다. 텐트를 살펴보니 바닥으로 스며든 물도 있었지만 ‘후라이’부분으로 부터도 물이 새어 들어왔다. 그 텐트는 제주도 여행할 때 두어번, 티베트에서 네 번짼가 쓰는 것이었다. 서울 동대문 산악용품 가게에서 텐트를 샀다. 원래는 비싸더라도 오래 쓸 수 있는 것으로 사려고 했다. 1년을 넘게 여행하는데 당연히 튼튼해야했다.
비가 들어오는 텐트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 가게 아저씨는 나를 흘겨봤는지 오랫동안 팔지못한 텐트를 저렴한 가격으로 준다고 꼬드겼다. 그래서 산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중국횡단 당시 높은 기온으로 인해 방수제가 다 녹아버린 것 같았다. 왜냐하면 비를 맞은 후에 자세히 살펴보니 촛농떨어지듯 방수제가 떨어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Is your tent OK? mine has broken. rain came into my tent during last night”
(텐트 괜찮아? 내건 다 망가졌어. 어제밤 비가 다 들어왔거든)
“really? Oh shit!!”(정말? 젠장)
“I think, have to go back to Lhasa to buy new one”(라싸에 새걸 사러가야할 것 같아)
“OK, see you in Nepal, I’ll give you my E-mail address”
(그래, 네팔에서 다시보자. 메일주소 줄게)
“We can go together till the Lache. I’ll take bus there which is going to Lhasa”
(라체까지는 다시 갈 수 있어, 거기서 라싸가는 버스를 탈거야)
그런데 거리가 벌어지는 듯 싶어 불안했는데, 라체에 도착하니 그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외국인들이 갈만한 몇몇의 숙소를 기웃거려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걸로 그들과의 동행은 끝이었다. 정식으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져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메일주소를 받았으니 네팔에서 다시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곳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다음날 아침 버스를 타고 라싸로 향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