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푸집을 짜고 그 다음날 기초 콘크리트 작업을 하고 있다.

돼지를 키우기로 마음먹으면서부터 했던 고민은 판매다. 보통의 돼지농장은 돼지를 키워서 공판장이나 육가공업체에 파는게 마지막 단계다. 생산-유통-판매가 분리되어있는 아주 일반적인 형태다. 우리도 ‘생산’에만 집중하면 어떨까 싶어 계산을 해본 적이 있는데 결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빼곡히 키워 많이 팔아야만 타산에 맞다. 자본주의의 흔한 논리, 박리다매다.

넓고 바람이 통하는 공간, 두툼한 깔짚, 수제 발효사료 등 우리가 원하는 사육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통-판매까지 직접하지 않으면 안됐다. 도매로 넘긴다면 사료값도 안나온다. 다시말해 돼지를 키우면서 정육점도 함께 해야한다는 얘기다. 농장 하나만을 운영하는데도 벅찬데, 정육점을 또 창업해야한다는 사실이 부담이었다.

엄청나게 무거웠던 마룻대를 혼자서 걸었다.

그 때문에 돼지를 키우기 시작한 올 초부터 가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주 시내까지 알아보았지만 이내 포기했다. 왕복 거리 때문에 교통비 문제가 걸렸다. 봉화읍내에서 구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읍내는 정말 작다. 우선 오랫동안 비어있던 가게들을 살펴보았다. 한 곳은 호프집, 다른 곳은 조명가게이었는데 두 곳 모두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해 보였다. 가장 아쉬운 점은 기존 건물에서 덧낸 부분이 너무나 허술했다. 단열 문제도 걸렸지만 쥐의 왕래가 쉬워보였다. 정육점을 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읍내가 작다보니 그 이후에는 가게가 나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부동산 정보지를 꼼꼼하게 살펴도 적당한 가게가 나오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선택해야했다.

우리의 선택은 다름아닌 집 앞에다 그냥 짓는 것이다. 가게가 안 구해져서 그냥 짓는다는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에겐 가능한 선택지였다. 우리 부부는 이미 살고 있는 집을 지은 경험이 있다. 비록 12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거의 완성했고 지금 잘 살고 있다.

가게를 짓는 일도 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더군다나 읍내에 가게를 구한다고 해도 기존 시설 철거와 단열공사, 방수와 타일공사 등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야 했다. 5년치 월세를 먼저 낸다는 생각으로, 그 정도 금액으로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접 공사해야했기에 최대한 단순한 구조로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마침 한국육가공협회에서 나온 책자에 소규모 육가공시설의 설계도가 있었다. 필요한 장비부터 동선까지 디테일하게 그려져 있서 너무 고마운 자료였다. 나중에는 햄가공도 할 계획이었기에 그 설계도를 따르기로 했다.

뜨거웠던 여름날, 지붕에서 단열재를 붙였다.
순식간에 골조를 세웠다. 혼자서.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외벽 단열재를 시공하고 있다.

땅 크기를 최대한 활용하는 선에서 설계를 해보니 약 14평 정도가 됐다. 설계할 때 염두한 것은 저렴할 것, 단열이 잘될 것, 천장이 높을 것, 밝을 것, 콘센트가 많을 것 그리고 시공이 쉬울 것 등이었다. 결국 ‘싸고 좋은데 짓기도 쉬운’ 조건이 돼 버렸다.

큰 결정을 할 때마다 20대의 자전거여행 경험을 떠올린다. 유라시아를 자전거로 여행하며 집에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수십 번도 더 된다. 그 때마다 내 처지가 돌아가는 것보다 앞으로 나가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았다. 스무 개의 고개 중에 열개를 넘은 뒤 너무 지쳐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돌아가나 앞으로 가나 똑같다. 야영을 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도시가 있는 곳까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야했다. 파키스탄에서는 그 이유로 하루만에 190km를 넘게 주행한 적도 있다. 길바닥에서 죽지 않으려면 그래야 했다. 그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일단 한 걸음만 내딛으면 끝까지 갈 수 있다고 믿고, 돌아가는 것보다 낫다고 되뇌이는 것이다.

첫 기초작업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첫 걸음을 떼야겠다는 생각에 그날 아침에 바로 레미콘과 포크레인을 예약했다. 그런데 거푸집 작업을 한 번도 안 해봤기에 그 날짜에 맞추는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애가 타서 몇 군데 공사업체에 문의했더니 우리 예산에선 부담스런 금액이었다. 결국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주먹구구식으로 밤11시가 넘도록 혼자서 작업을 했다. 겨우겨우 비슷하게 마칠 수 있었다.

또, 골조를 올릴 때도 그랬다. 나무를 잔뜩 사다놓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마침 며칠 뒤 비소식이 올라왔다. 역시나 업체에 맡길까 또 고민했지만, 파산을 우려해 직접 진행하는 걸로 결정했다. 낮밤으로 일을 했고, 골조를 마친 그 날 정확히 폭우가 쏟아졌다.

외벽 합판을 다 쳤다. 삐걱거리던 벽도 이제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돼지를 키우기로 마음먹으면서 생산-유통-판매를 모두 하기로 했다. 올초 가게를 알아보다가 집 앞에 직접 짓기로 했다. 지난 여름 공사를 시작해 3개월만에 완성된 정육점.
바닥을 에폭시로 마감하고, 작업대와 육절기 등 필요한 것들을 배치해놓았다.

14평짜리 건물을 혼자서 3개월 만에 지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외부 페인트칠만 남았다) 흙집인 우리집과는 다른 목구조 방식이다. 처음 해 본 일이다. 우리집 근처에서 농사짓는 어르신은 ‘내 소싯적에 현장 일을 많이 해봐서 아는데’라는 조건을 달며 거짓말 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짓냐며, 몇 년 일하고 온 거 아니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나 역시도 내가 지은게 맞는지 아내에게 한 3번은 물어봤다. 볼 때마다 꿈꾼게 아닌가 싶은 정도다.

바닥공사를 마친 뒤, 생전 처음 만져보는 정육기계들을 사다 넣었다. 기계들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고기에 대해서 완전 무지하다. 정육과 관련한 경험이 전무한 것은 물론이고, 고기를 구워본 적도 거의 없다. 왜냐, 내가 굽고 있으면 분명 답답한 누군가가 나타나 집게를 뺏고 마니까. 봄에 발골교육을 시작으로 띄엄띄엄 교육도 받고, 책으로 인터넷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첫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자꾸자꾸 넘어진다. 잊고 또 잊고 머릿속에 지우개가 넘쳐난다.

현대식 축산업의 문제점을 느껴서 몇 년간 채식도 했던 우리가 건강한 방식으로 직접 키워보자고 시작한 게 3년 전이다. 돼지도 모르고, 정육도 모르던 사람들이 축사를 짓고, 정육점을 지었다. 지금껏 숨이 차게 달려 며칠 전 마지막으로 정육점 ‘허가’가 완료됐다. 꼭, 마라톤 골인지점을 막 통과한 기분이다. 그런데, 골인지점이 철인 3종 경기의 출발선인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또 달려야하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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