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유채꽃이라니. 넓고 넓은 꽃 밭을 보고 넋을 잃었다.
소를 타고 가는 소년. 신비로운 풍경이다.
자전거 타는 인도인.

그 날 도착한 조그마한 도시에는 숙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난감했지만 더 이상 갈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 결국엔 식당 뒤뜰에다가 텐트를 쳐야겠다고 생각하곤, 도시의 입구로 되돌아가 그곳에 위치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이라고 해봐야 흙으로 화덕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짜파티(넓고 동그란 밀가루 빵)를 굽거나 위에 솥을 얹여놓는 장치와 그것들을 덮는 천막, 그 앞에 평상 몇 개가 다였다. 주먹만한 쥐들이 냄비 안으로 들어갔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뭐 분위기가 상당히 좋은 곳이었다. 비하르 주의 대부분 길가 식당은 그랬으니, 그 식당에서 그것을 보았다고 한들 뭔가 특별한 불만같은 것을 낼만한 사항은 아니었다.

짜파티와 사브지(우리나라 카레같은 것)로 저녁을 떼운 후에 뒤뜰에다가 텐트를 치겠다고 시늉으로 얘길했다. 아저씨는 처음에 복잡한 설명같은 것을 하더니 결국 허락했다. 하지만 그곳엔 곳곳이 용변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도 조금 적은 곳에 텐트를 펴고 치려고 하는데 누군가 뛰어와서는 안된다고 하는게 아닌가. 

금방은 된다고 했다가 안된다고 하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복잡한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그리곤 식당 앞에다 텐트를 치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확인하기 위해 식당앞으로 이동 텐트를 치는 시늉을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뒤나 앞이나 똑같다고 얘기하고 뒤에 치려고 했으니 또 안된단다. 화장실 문제였거나 치안문제 둘중에 하나일거라 생각하고 식당 앞에다 텐트를 쳤다.

지하수 펌프로 대충 얼굴을 씻고 안으로 들어갔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으므로 일찍부터 누워 잠이 들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떴고,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었다. 차량들이 지나갈때마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그림자들이 텐트 바깥면을 채웠다. 무서워서 그냥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그림자 하나가 가까워지더니 자크를 슥 여는게 아닌가. 그걸 본 후에 내가 선수쳐서 ‘와~ (왓)’하면서 자크를 확 열어제쳤다.

허~억!! 그곳에는 남녀노소 주변 마을사람들 모두모여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족히 서른명은 될 것 같았다. 서른명과 나는 눈싸움을 했다. 그들의 눈에서는 낯선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 뿜어져 나왔고, 내 눈에서는 당황과 신비함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누가 더 신기한 사람인지 대결하는 듯 했다. 잠시 말을 잇지못하다가 식당 주인아저씨가 와서는 그들을 해산시켰다. 그 때시간이 저녁 8시가 조금 넘었을 때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만도 했다.

다시 잠을 자려니 잠도오지않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려했다. 노트북의 날짜는 황당하게도 12월 24일을 표시하고 있었다. 아! ‘크리스마스 이브였구나!’ 그제서야 혼란스러운 정신상태를 틈타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같았으면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인터넷이나 거리마다 분위기가 풍기기 때문에 지나칠 수가 없었지만, 인도는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금방까지만해도 조금 힘들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혼자 이렇게 많은 관객들 앞에 누워있으려니 괜히 슬퍼지고 외로워졌다.

중국에서도 한번 겪었고 류시화님의 책을 통해서도 인도사람들의 대강의 성격을 알았던 탓에 적응이 좀 빨랐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대단히 고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밥먹을 때도 우르르 몰려들어 뚫어져라 쳐다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힌디어로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 나는 ‘힌디 네힝’하고는 힌디어를 못한다고 얘길했다. 큰 땅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그런성격인지 계속 힌디어로 말을했다. 빠뜨나로 향하고 있을 때 오토바이를 탄 청년이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이요. 영어 잘하시네요?”
“저는 2년간 호주에서 일했어요.”
“아. 한국에도 인도사람 있어요.”
“제 친구도 한국에 있어요. 결혼했어요?”
“아니요. 결혼안했어요. 여자친구도 없는걸요.”
“아버지 직업은 뭐에요?”
“그건왜요?”
“짐이 왜 이렇게 많아요?”
“이것저것 많이 들어있어요.”

한참을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 그 사람의 목적을 대충 짐작해보니 ‘목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지고 갔다.

“Welcome to India”

인도라는 나라는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였다. 사방이 훤히 뚫여져 있는 광활한 평야. 새까만 얼굴을 하고 언제나 즐거운 듯한 모습들.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 아저씨와 소 등에 올라타 집으로 향하는 꼬마. 야자나무가 펼쳐진 강 충적지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말들. 진한 수증기와 먼지 때문인지 유난히 붉게 타오르는 저녁의 태양. 짙은 아침 안개에 실루엣을 살며시 드러내는 평야 위의 거대한 나무들의 모습과 그 속에서 농사짓는 인도인들의 모습은 특히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6일만에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도시의 크기만 컸지 도중에 지나쳤던 도시들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길위의 소들은 아무데나 변을 찍찍 거리고. 숙소를 잡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간 한국음식을 파는 곳의 음식은, 후회하게끔 만들었다. 모든 것이 기대이상이었다. 많이 깨끗해지고 ‘좋아졌다’고 들었기에! 이제 인도를 느껴보자!

하천 옆 소와 사람들.
소 치는 아이.
길 따라 걷는 코끼리. 말도 안되는 풍경.
다리 위에서 본 풍경. 강 옆 습지에서 다양한 작물들을 키우고 있었다.
파트나 근처 강가강(갠지스)
OTL 호텔. 이런 이름이 실제로 있다니.
끝도 없는 논밭이지만 더러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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