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트의 일상풍경. 가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빨래를 가트에 널었다.
겅가에 띄우는 배는 어딘가에서 만들어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하나씩 만들어진 게 아닐까.
배를 만드는 아저씨
낮잠 자는 수행자.
수행자.
거리의 이발소.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염소. 이곳에선 동물도 비교적 평등하다.
뒤통수 맞던 이발사 아저씨.
누군가의 아버지일텐데. 가슴이 아팠다.

겅가변의 ‘가트’를 매일같이 산책했다. 생각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강물로 들어가 목욕을 했다. 서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앉아서 상념에 빠진사람들도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미술학도들도 많이 보였고 인도 최고인기 스포츠인 크리켓을 즐기는 젊은이들, 어린이들도 많았다. 구걸을 하거나 길에서 이발을 하는 낮은카스트를 가진사람도 많았고 오렌지색의 옷을 입고 은색 통과함께 탁발하는 수행자들도 많았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곳의 어린이들이었다. 많은 어린이들이 외국인들이 주는 여러가지 물건, 펜이나 초콜릿 또는 돈에 길들어져 뭔가 줄 것 같은 외국인만 보면 달려가 일단 사진부터 찍으라고 ‘뽀또~ 뽀또~’라고 메달렸다. 그리곤 성화에 못이겨 사진한장 찍고나면 ‘머니~ 머니~’ 했다. ‘노~ 머니’라고 하면, ‘펜~ 초코렛~’이라고 바꿔 말했다.

나역시 그런애들에게 몇번이나 잡혀 사진을 찍었는데, 한번은 친구들하고 같이 ‘쿠키’사먹으라고 5루피(110원정도)를 쥐어줬더니 나중에 또와서 계속 찍으란다. 그제서야 ‘얘들 안되겠구나’하고 생각한 후부터는 절대 돈을 주지않았다. 

외국인들이 계속 돈을 주다보니까 외국인들에게 사진찍히고 돈받는 것이 아예 이 꼬마들 직업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경제사정이 괜찮은 나라의 꼬마들은 그렇지 않은걸로 보아 이곳도 경제사정이 나아지면 그러지 않을것이란게 예상이 되긴하지만, 성장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짜를 좋아하게 되고, 머리는 점점 까지고.

강변에 쪼그려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 중 눈에 띈 사람이 있었다. 지나다니며 이발하는 아저씨였다. 내가 앉을 때 마침 어떤사람을 이발하기 시작했는데 옆에 목욕하던 아저씨가 쫓아와서는 큰소리로 외쳤다.

“!@$%^#$&%*^($*&#@^!$^@%&#^$&%(^*&*%#&@^!%@”

대충 하는 행동을 보니 “내 아들부터 안하고 왜 이사람 먼저하냐”는 것 같았다. 그러자 이발사 아저씨는,

“@!#^$&%*$^%$#$^*&$()*^%$*^&%#@^$!%@”

“손님이 수염만 깎을거니까 그랬다”고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발을 계속하고 있는데, 멀리에 앉아있던 또다른 아저씨가 뛰어와서는 그 이발사 뒤통수를 마구 때리는 것이 아닌가.

“!@#^$&*()^&%(^*%&^#$%@^#$*^%&(^%#”

라고 때린 아저씨가 힌디어로 막 뭐라고 했고, 이발사 아저씨는 뭐라 대꾸는 못하고 겁먹고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사정하는 것 같아보였다. 그런데 때린 아저씨의 웃음이 흐르는 표정을 보니 장난으로 때린 것 같았다. 이발사 아저씨도 분명 누군가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아! 이게 카스트구나’ 

아마도 그 이발사 아저씨는 최하계급인 ‘수드라’가 아니면 계급 축에도 속하지 못하는 ‘하리잔’이라고 불리는 ‘불가촉천민’ 일 것이었다. 튀통수를 때린 아저씨도 그렇게 잘사는 것 같아보이진 않았으므로 이발사 아저씨는 아무래도 ‘하리잔’. 도대체 종교가 뭐길래 그렇게 나누어 놓고 인격적인 대우도 제대로 받지못하는가. 계급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직업도 나뉘어져 있다니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뒤통수를 때린 아저씨는 지켜보는 나에게 키득키득 웃으며,

“저사람 못사는 사람이니까 네 머리카락도 잘라서 좀 도와줘”

라고 했다. 이발사 아저씨가 손님 하나 늘었다고 생각했는지 내 쪽으로 살짝 돌아봤다가 다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고는 하던 이발을 계속했다.

바라나시 아이들. 이 아이들과 사진을 찍으며 한참 놀았다.
바라나시 아이들
바라나시 아이. 이 사진을 끝으로 아이들은 접촉하지 않았다. 죄책감이 생겨서.
디아를 파는 소년. 디아는 소원을 빌기 위해 강에 띄우는 꽃이다. 디아를 살 생각이 없었으나 다짜고짜 사진을 찍으라고 하곤 돈을 달라고 했다.
나도 배를 탔다. 아저씨는 말이 한 마디가 없었다.
배를 모는 아저씨.
배를 탄 소녀들과 소원을 비는 디아.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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