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서 만난 라자 마할 성.
성벽이 그대로이지만 성벽 밖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성으로써의 역할은 끝난 것 같았다.

카주라호에서 오르차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숲 사이로 난 아담한, 2차선이 약간 안되는 소로길이었다. 나무들도 다른 곳과는 달리 활엽수가 많은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계속보아왔던 상록수 같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잎갈이를 하지 않는 그런 나무들이 아니라 겨울답게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들이었다. 또한, 깊은 숲이었기에 호랑이라도 당장 덤벼들 것 같은 불안한 마음으로 주행했다.(남부인도에서는 정말 호랑이가 나타난다!!)

오래간만에 가지만 앙상히 남은 숲길을 달리자니 마치 한국의 야산의 모습같아서 대단한 친근감이 생겼다. 오르차는 카주라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차따뿌르라는 곳과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조그마한 마을을 거쳐 3일 되는 날 도착했다.

오르차는 한 때 ‘분델라’라는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물론 왕국이었던 이유 때문에 이곳에 궁전이 있고 기념물이 몇몇 세워져 있는 곳이다. 외진 곳에 있고 유명세를 탄 지 얼마되지 않은탓에 조용하고 맑고 깨끗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고급 호텔과 리조트 들이 많이 들어서서 관광객들은 많아지고 여행자들의 발길은 더 끊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입구에서부터 평온한 기운이 팍! 팍! 느껴졌다. 

관광객들도 많이 보이지 않고 마을 자체가 조용했다. 여행자 숙소를 찾아갔을 때도 크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지않고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방을 얻을 수 있었다. 분위기가 평온해서 그런지 도착한 시간이 해질녘이었는데 다른 곳과는 달리 해가 지는 소리가 조용하다고 느껴졌다.
중국에서부터 티베트, 네팔을 지나 인도까지. 내가 왜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을까. 꼴까따와 남인도를 가지않고 전혀 계획에 없던 이곳 오르차에 오게되었는지. 온갖 고생을 하며, 싸우며, 화내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이곳까지 왜 왔을까.

‘그 성을 본 순간, 지금은 ‘차뜨르뿌지 사원’이라고 불리우는 그 성, 왜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는지 알수없는 뭉클함으로 알 수 있었다. 수백년 전부터 나는 이곳에 오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와야만 했지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야 누군가로부터 조종당해 이곳까지 오게된 것이다. 각종 영화를 통해서, 특히 ‘슈렉’이라는 만화를 통해서 ‘누군가’는 나를 훈련시켰던 것이다. 힘들지 않게 즐거운 마음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누군가’는 나를 가르쳤고,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다. 운명이다. 운명은 받아들여야 한다.

아침일찍부터 길을 나섰다. 먼 길을 왔기에 이제 되돌아 갈 수도 없고, 되돌아 가서도 안된다. 다소 겁이 났지만 자전거 여행으로 단련된 체력이 있지 않은가! 스스로 너댓명은 너끈하다고 항상 상상에 빠져있지 않았던가! 이제 실전이다. 겁이 많은 나를 ‘누군가’가 바꾸어 주지 않았는가! 이제 눈앞에 있는데 뭘 망설이는가!!

그곳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과연 어떤 괴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불을 뿜는 용일까. 용이라면 그 크기가 얼만할까! 아니면 사람처럼 생긴 ‘몬스터’인가. 그의 무기는 무엇인가. 나의 삼각대로 과연 대적할 수 있을까. 용을 물리치고 난 후, 꼭데기 탑방 공주에게 뽀뽀를 한 뒤 깨어났을 때 못생겼으면 어떻하나. 그 공주랑 결혼은 해야만 하는 것인가. 부모님께서 인도여자라고 싫어하시면 어떻하나.

첫 날 자전거로 도착하며 멀리서 봤을 때 너무 놀라웠고, 다음날 아침 가까이서 봤을 때는 더 놀라웠다. 반지의 제왕 영화 촬영을 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신비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성이었다. 카트만두 ‘두르바 광장’에서 봤던 조그마한 인도식 힌두 사원, 카주라호에서 봤던 정교하기 짝이 없는 천년이나 된 힌두 사원들은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곳에 서 있는 성은 그것의 몇배나 됐다. 웅장한 건축물을 대했을 때 뭉클함이란.

성 주변의 여러 곳에서 찌릉내(지린내)를 맡아가며 힘들게 성 안에 들어섰을 땐, 내부 규모에 또 한번 놀랐다. 밖에서 봤을 때 창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아 대단히 많은 방들로 구성되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훤하니 넓고 높은 공간이 찌릉내에 찌들은 가슴을 탁 트여주었다. 사람도 한명 없어서 편~하니 구경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또, 용이나 괴물은 흔적조차 없고 탑방의 공주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제한지르 마할’(마할은 성이라는 뜻). 금방 갔던 ‘마법의 성’은 비교적 인도식인데 반해 제한지르 마할은 이름 ‘마할’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슬람식 궁전이었다. 뭘 그렇게 관찰하려는지 ‘망루’같은 형태가 많았는데, 올라가보니 사람을 세워 관찰하도록 한 것 같진 않았다. (이슬람 사람들은 그냥 모양으로 그런 것을 짓나보다.)

관광객이 거의 없는 높은 궁전에 앉아서 주변을 관찰했다. 이거 뭐 기분이 완전 ‘왕’ 된 기분이었다. 옆에 누구라도 있다면 당장에 명령이라도 할 것 같았다.(예를들어, 여봐라! 저기 건너편 성에 공주가 아직도 자고 있는지 여쭈어라!) 날씨도 좋아서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자연스럽게 명상이 되며 인도인들로 부터 상처받았던 가슴이 치료되고 안정이 되는 듯 했다.

카주라호의 사원들보단 건축연대가 훨씬 처지긴 했지만, 외국인인 내가 봐서는 너무 멋진 건축물이었는데 상당히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궁내에 어떤 특급호텔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곳은 벽에 페인트칠도 잔뜩해놓고 보이지 않는 곳에는 상당한 쓰레기들도 버려져 있었다. 인도에 이런 궁이 비교적 많다고는 하지만 보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오르차를 지배했던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차트리스’. 같은 모양의 건물이 5개나 있었다. 어떤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성도 아니고 사원도 아니고 이렇게 만들어 놓는게 뭐가 좋은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무덤이 있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러나 그 옆을 흐르는 ‘베트와’강에서 들리는 조용한 물소리와 함께 고요한 평화를 누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저녁쯤에 베트와 강 건너편에서 보는 차트리스와 일몰은 세상사람 모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할 만큼의 감동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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