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를 들어오기 전 자전거 여행자를 길에서 만났었다. 그는 프랑스 서부에서 출발하여 니스까지 간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북경까지 가는 자전거 여행에 대비한 예비여행이라고 했다. 묻지도 않았지만 자기가 지나온 길 중 추천하고 싶은 곳을 지도를 펴 알려주었다. 산이 좋은 곳 하며 바다가 이쁜 곳.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 중 눈길을 떼지 못한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지도에 길도 표시되어 있지않은 마치 바다위를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지도는 물 위에 과자부스러기가 떠있는 듯 그려져 있었다.
“영어를 잘 못해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곳엔 길이 있어요.”
“정말요? 비포장도로겠네요?”
“네 그래요. 그리고 오직 자전거만 다닐 수 있어요.”
“거기가 ‘까날 두 미디’ 인가요?”
“아니에요. ‘까날 두 미디’는 ‘베지에’부터 시작해요. 거긴 운하가 아니에요.”
해변가 야영장에서 또다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그는 독일인으로 니스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가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보름간 휴가를 받아서 많은 시간이 없다고 덧붙였다.
“까마그에 갈거에요.”
“거기가 어디에요?”
그는 지도를 펼쳐서 손으로 짚었다. 그가 짚은 곳은 얼마전에 만났던 여행자가 추천해준 곳이었다.
“거기에서 백마를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수많은 새도 살고 있지요.”
백마도 살고, 새도 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지 않았지만 하루 이틀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기에 더 이상 묻지않았다.
다음날 그와 함께 길을 나섰다가 나의 느린주행에 미안하여 먼저 보냈다.
길은 바다를 끼고 갔다. 평소에는 보지못했던 대규모 공단이 나왔다. 전까지는 길이 산을 낀 탓에 좁다란 해변이 특색이었는데 그곳엔 넓고 긴 백사장이 나왔다. 하지만 물도 더러운 편이고 공장을 배경으로 한 탓인지 피서객들의 숫자도 적었다. 길은 바다방면으로 계속 향했다. 그러나 도랑을 따라가는 길은 공장지대 깊숙이 들어갈 뿐이고 서쪽으로 향하는 다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들어간 것인데 결국 ‘길없음’표시를 만났고 돌아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헤매고 난 뒤 ‘길없는’지역으로 들어가는 작은 도로를 만났다. 그 길을 따라가다 더 작은 도로를 만났고 그 길 끝에는 강이 나타났다. 강의 이름은 ‘론’,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도하선’을 타야만 했다. 도하선을 타고 건넌 그곳에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고 다행이게도 여행정보센터가 있었다.
여행정보센터에서 얻은 자료는 모두 프랑스어로 되어있었다. 그림으로 대충이해를 하자면 그곳은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 같은 다양한 철새의 서식지 같았다. 특히 두루미류 같아보이는 목이 길고 다리가 긴 새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또, 큰 뿔이 달린 검정색 소를 쫓거나 흰색의 말을 쫓는 ‘카우보이’의 사진도 있었다.
론 강은 알프스산맥에서 발원하여 그곳까지 흘러왔다. 가지고 있던 수많은 흙과 모래를 그곳에 쌓아 삼각주를 형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자연을 지키면서 관광자원으로써도 활용하고 있는 듯 했다. 내부에 붙은 큰 지도를 보며 확인차 안내소 직원에게 물었다.
“이곳에 자전거로 갈만한 길이 있나요?”
“네, 매우 좋은 도로가 있습니다. 자전거만 갈 수 있는 도로지요”
“아!! 그런가요!! 어느쪽으로 가야되죠?”
그 질문에 그녀는 거대한 지도에 그려진 그 마을에서부터 다음마을까지 허공을 가로지르며,
“이렇게 도로가 나 있어요”
속으론 ‘그 정도는 나도 설명하겠다’ 하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그곳을 나왔다. 정확하게 물어본다는 것도 그 안에서는 힘든 일이었다. 그저 하나의 길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서쪽으로 갔다. 길은 서쪽에서 남쪽으로 다시 서쪽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다시 서쪽으로 틀었을 때는 비포장도로로 되어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그 날 저녁과 아침에 먹을 식량과 물을 구했기에, 어찌되든 모험을 한번 하든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그 길이 서쪽으로 나있다는 이유만으로 진입했다.
입자가 작은 고운 흙으로 된 길이었다. 자전거만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거짓이었던 것일까. 수많은 차량들이 속도를 늦춰 비틀거리며 내 옆을 지나갔다. 고운 흙들은 자동차 바퀴에 자극을 받아 공중을 가득 메우다가 날아가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들어간 곳에 아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호수같은 것이 나왔다. 호수라기 보다는 소금수확 전의 염전같은 곳이었다. 강한 바람에도 물결이 크게 일지않는 것으로 보아 아주 얕은 곳임이 확실했다. 어느새 양편이 모두 그런 물로 된 곳이 나타났는데 냄새와 분위기가 여간 짜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자동차가 가는 길은 그 사람들이 말한 그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전거만 들어갈 수 있는, 큰 바위로 길을 막아놓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자전거만 다닐 수 있을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나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또, 길은 더 좁아져 기분나쁜 물은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더 황량한 곳으로 변했다. 바다쪽에서 염전같은 곳으로 물을 퍼올리는 펌프를 만났을 때는 구토를 할 뻔했다. 얼핏보기에도 더러운 물을 끌어올리니까 그 냄새는 그 때까지 맡아본 것 중 최악이었고, 그곳에서 발생하는 누런 거품은 그 주변을 장악하고 산더미처럼 쌓여 바람에 조금씩 날아갔다.
아무래도 바다가 얕은 그 지역을 매립하다가 실패하여 펌프로 그 내부에 썩은 물들을 순환시키는 것 같았다. 또, 날씨는 왜 그런것인지 낮동안 강하게 내리쬐던 태양은 구름에 가려 아주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금방 비라도 쏟을 것 같은 분위기에 페달질을 재촉했지만 아득하게 보이는 지평선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길은 다시 자동차 도로와 합쳐졌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자동차가 가는 길로 따라갔다. 날은 더 어두어지고 더러운 물이 고여있는 ‘호수’는 계속되었다. 날씨 때문에 어딘가에서 야영을 해야했지만 적당한 장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자동차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다. 고운모래가 단단히 굳은 대단히 넓은 모래밭이었다.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캠핑카’나 텐트로 야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바다에서는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음날 다시 돌아나가는 고생을 생각하니 허무했지만 일단은 더러운 냄새가 나는 곳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가까운 곳에 야영을 하던 중학생정도의 애들이 떼로 주변에서 ‘칭챙총’하며 놀려대는 바람에 공포스런 분위기가 아주 분노스런 분위기로 바뀌어 버렸다. 힘만 좀 남았다면 흠씬 패버리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한 날이라 그럴 순 없었다. 그 애들을 보니 그곳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의 수준을 알 것 같았다. 내가 머물만한 곳은 아니었다.
다음날 그곳을 빠져나오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물었다.
“자전거만 다니는 도로가 어디죠?”
대답을 듣고 찾아간 곳은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커다란 바위 틈을 겨우 지나니 뻥 뚫린 비포장 도로가 나왔다. 전날과 비슷한 분위기의 길이었지만 조금은 더 깨끗한 느낌이었다. 쨍하고 내리쬐는 태양 때문이었을까. 그 길을 한참 따라 올라가니 드디어 공원표지판이 나왔다. 그곳에는 이미 자전거를 타고 온 몇몇의 관광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마치 늪에서 탈출한 느낌이었다. 그곳에는 조금씩 보이던 붉은빛이 감도는 두루미류의 새들이 단체로 물가에서 놀고있었다.
극히 평평한 길이 계속됐다. 길 양편으로 고산지역에서나 보던 키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많은 새들이 보였고 자전거를 타는 많은 관광객이 보였다. 자전거를 편하게 탈 수 있는 것은 아주 좋았지만 생각만큼 큰 것을 경험하진 못했다. 관광객이 많은 그 깨끗한 곳을 가기전에 매립에 실패한 듯한 곳을 이미 지나고 실망한 탓에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