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9월 17일 오전 7시 54분에 ‘띵’하는 문자와 시작된 날벼락은 가슴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가축 등에 대한 일시이동중지명령 알림>이라는 제목의 문자는 파주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확진된 후, 첫번째 조치사항이었다. 당일 오전 6시 30분에 확진판정을 했으니 1시간여 동안 관계자들은 사안의 중대성에 대해 논의한 뒤 ‘이동중지명령’을 발빠르게 내렸다.
얼마 지나지않아 전화가 왔다. 매달 한 번씩 전화하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였다. “사장님, 소식들었지예?”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폐사하는 돼지있으면 바로 신고하시고예, 절대 이동하시면 안됩니더”하고 명령조의 어투로 끝을 맺었다. 뉴스에서 말하는 ‘전화예찰’이었다. 돼지키우는 이웃농가와의 단톡방에도 한탄이 쏟아졌다. 울타리, 사료, 방역 등 여러가지 걱정들이 뒤섞였다.
우린 다른 걱정에 앞서, 돼지 사료에 섞어 쓰고 있는 미강이 당장 없다는 게 생각이 났다. 그 날 정미소에 미강을 가지러 가게 돼 있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신선한 미강을 사료에 섞기 위해 최대한 빠듯하게 미강을 가지고 온 게 문제였다. 일단은 발효시켜놓은 사료와 유기농배합사료를 최대한 써야했다. 자의적 판단으로 이동은 금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이하의 벌금’인 것은 별개의 문제다. 힘모아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
두번째는 정육점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문제였다. 우리농장 트럭은 돼지농장에서도 돼지와 사료를 실어나르는 큰 역할을 하지만 정육점 공사에서도 자재를 실어나르는 중역을 맡고 있다. 몇 가지만 마무리를 하면 다 끝나지만 그것도 최소 이틀 뒤로 미루어야 했다.
세번째는 ASF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정부에서는 최선을 다해 방역을 하겠지만,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린 3년여 준비기간을 거쳐 이제 판매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준비하는 동안 쓴 자본들이 우리 부부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거의 없고, 농협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순조롭게 팔아야 이자며 원금이며 갚을 수 있다.
이 병은 정말 무서운 병이다. 걸리면 죽는다. 현재 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병의 종류는 ‘심급성’과 ‘급성’인데 1일~7일 사이에 폐사한다. 바이러스에 의한 병이라 항생제는 아예 소용이 없고, 바이러스 자체가 너무 복잡해 분석도 2~30%정도밖에 안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1921년 케냐에서 발견한 뒤 100여년이 지났고, ‘선진국의 연합’인 유럽에도 타격을 입혔지만 방어만 겨우 했을 뿐 바이러스를 잡지는 못했다.
지금 역학조사 중이지만 전문가들은 멧돼지에 의한 전파를 가장 두려워한다. 야생돼지들은 인간의 통제 아래 둘 수 없고, 개체수 확인도 감염여부 확인도 쉽지않다. 짝짓기를 위해서 멀리 떨어진 개체들이 서로 만나기도 하기에 전국적인 전파는 시간문제가 된다.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돼지열병’도 멧돼지가 병의 전파의 주요요인이라고 한다. 축사 내 돼지와 직접적인 접촉보다 인근에서 폐사하고, 사체를 건드린 까마귀나 고양이, 쥐, 심지어는 파리까지 병을 옮길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고 한다. 멧돼지에 의해 전국적으로 퍼지고 난 뒤에는 ‘방역’은 의미가 없게 되고, 소강상태가 되더라도 자연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바이러스가 언제든 나타나 돼지들을 죽일 수있다. 풍토병이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원래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야생돼지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예를들어, 영화 라이언킹의 품바(혹멧돼지, warthog)에게는 이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무증상’이다. 감기같은 증상도 없다. 병도 아닌 셈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사육돼지들을 옮겨가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1921년 케냐에서의 일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바이러스는 낯선 돼지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돼지질병이 되었다.
병에 걸린 돼지들은 ‘돼지고기’가 되어 바다를 건넜고, 인간이 남긴 돼지고기는 돼지밥으로, 바이러스는 그렇게 옮겨갔다. 아프리카를 떠난 바이러스는 사육돼지, 야생돼지 가리지 않고 감염을 시켰고, 폐사했다. 1960년대 서유럽을 강타하고 90년대에 잠잠해졌지만, 다시 2007년 동유럽을 강타하며 동아시아, 동남아시아까지 퍼지게 되었다.
우리는 광우병, 구제역 사태를 보며 공장식 축산업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며 대안을 찾아 축산업을 시작했다. 축사는 네 방향이 모두 뚫려있어 신선한 바람이 거침없이 통한다. 지붕은 50%가 투명이라 햇볕이 축사 바닥 구석구석을 비춘다. 마리당 2평 정도의 생활공간을 제공하여 스트레스를 줄였다. 바닥은 콘크리트나 플라스틱이 아닌 두꺼운 톱밥으로 되어 있다. 사료는 지역에서 나오는 미강과 유기농배합사료를 함께 섞고 발효시켜 준다.
이렇게 하면 병치레가 별로 없고, 세상 걱정없이 마냥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일반적인 돈사에서 흔히 겪는 호흡기질환, 피부질환, 스트레스에 의한 각종 사고(물어뜯기 등)가 거의 없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앞에 닥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공장식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나 멧돼지의 접촉위험이 더 커 전염병에는 더 취약하다. 숲 속을 누비는 멧돼지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이동중지명령(Stand still)문자가 왔다. 어제 김포와 파주에서 연달아 ASF 양성을 확인했고, 오늘 강화의 한 양돈 농가가 ASF 감염의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건, 이들 농장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 북한 쪽에서 흘러오는 강과 인접해 있고, 사람과 접촉이 잦은 모돈에서 발병했다는 점, 농장을 드나든 차량이 연관이 돼 있다는 점 등이다. 또, 구제역이나 일반 돼지열병보다 치사율은 높지만 전염력은 낮아서 차단방역만 잘 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구제역이든 AI든 관계가 없을 때는 안타까움 뿐이었다. ‘병을 빨리 잡아야 할텐데…’, ‘더이상 퍼지지 않기를…”하며 소들, 돼지들, 닭들, 농가들 어쩌나 싶었다. ‘양돈 농가’가 된 지금은 안타까움에 간절함이 더해 졌다.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문장 앞뒤에 “제발”이 수십 개, 수백 개 더 붙은 상황이랄까?
확진되고 하루 이틀 조용하면 이제 끝나는건가? 하다가 또 늘어나고, 늘어나고 그렇게 지금껏 총 다섯곳으로 늘어났다. 한 군데씩 늘어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암담하다. 정부의 방역이 성공적이길 간절히 바라고, 농장 자체적인 방역계획도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조하고 착찹한 마음은 사라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