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새벽 6시에 축사에 갔다. 새끼들은 모두 여덟마리가 태어나 있었고, 크기가 비슷비슷했다. 건강해보였다. 어미돼지에게 밥을 주었더니 벌떡 일어나 와서 밥을 먹었다. 특별히 미역으로 끓인 죽을 함께 줬다. 산후보양식으로 미역만큼 좋은 게 없다. 밥도 많이 주고, 미역죽도 상당한 양이었는데, 금방 해치웠다.
A wise meat-eating lifestyle
슬기로운 육식생활
베테랑들이 모이니 이사는 딱 13분만에 끝이났다. 돼지들로서는 아쉬운 산책이었을 테다. 내가 먹이통을 들고 앞장서고, 그 뒤를 선배들이 큰 합판으로 ㄷ자 대형을 만들며 따라왔다. 낯선 사람들, 환경에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잘 따라와주었다. 밥을 줄 때마다 나를 인지시키기 위해 “아저씨야~”하는데, 이 날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알아듣는 듯 아닌 듯 따라왔다.
“어머 어떡해! 돼지들이 탈출했어!” 전화기 너머로 아내 유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던 일을 급하게 접고, 아주 전속력으로 집 앞 임시축사까지 허겁지겁 뛰어갔다. 150m를 뛰어가며 오만가지, 십만가지 생각이 멤돌았다. ‘돼지들이 산으로 올라갔다면?’, ‘논에 들어갔다면…?’ 끔찍했다.
전통적인 사육개념을 지금에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돼지에게서 빼앗은 햇볕과 바람, 땅은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야 돼지도 사람도 건강하다는 걸 명심하자. ‘내가 먹는 것이 나’라고 한다. ‘나’는 똥통 위에 사는 병든 돼지가 될 것인가, 햇볕받고 흙에서 사는 건강한 돼지가 될 것인가.
사람들에게 자랑처럼 ‘우린 톱밥을 채워서 돼지를 키울거에요’라고 했던 말이 가볍게 느껴졌다. 톱밥차가 쏟아 부은 양을 보고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생각한 건 첫 번째로 도착한 톱밥을 치웠을 때, 딱 그때 뿐이었다. 한 번에 두 대가 들어온 날은 아침부터 치우기 시작해도 밤 10시 너머까지 삽질이 이어졌다. 가슴 속에 성취감 따위가 들어갈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날마다 ‘산’을 치워도 또 ‘산’이 생겨났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삽겹살 집에서 회식을 하거나,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때, 그 누구도 눈치를 보거나, 항의를 받거나, 혹은 현수막이 걸리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건강과 즐거움을 주는 돼지들과 그들을 키우는 이들에겐 혐오와 비난, 항의가 빗발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