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라싸로 향하는 버스, 60시간 가까운 이동시간
눈을 감고도 악몽, 눈을 뜨고도 악몽
머리가 깨질 듯 엄청나게 아픈 두통, 현실을 피해버리고 싶은 마음
새벽 두시에 도착한 라싸에서 정신없이 숙소를 잡고 잠을 청함
3500m의 낮은? 고도에서 씻은 듯 사라진 고산증
황량하고도 광활한 황색 모래사막. 풍만이와 함께 그 사막위에 서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이 답답함.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사막의 모래는 우리를 조금씩 삼키려 할 뿐 길을 내어놓지는 않았다. 발은 점점 모래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빠져나가려 할수록 삼키는 속도는 빨라져만 갔다.
꿈이었다. 무서운 꿈 때문에 아직 여명도 없는 새벽에 깨었나보다. 좌우를 살펴보니 창밖은 거의 완전한 암흑이었다. 불빛이라곤 버스에서 내비추는 전조등과 그에 반사된 차선위의 반사등 밖에 없었다.
이틀째 되는 밤이었지만, 서쪽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이 라싸행 버스는 줄곧 북동쪽이나 북서쪽으로 난 평길 고속도로만 달렸고, 심지어 내가 깨어있는 수십여분 동안은 굽은 길 하나 없는 직선도로였다. 깨어있는 사람은 운전기사 아저씨와 나뿐 모두 잠들어 있었다.
어릴 때 읽었던 ‘오싹오싹 귀신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 책에 ‘지옥행 버스’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마치 내가 그 버스안에 있는 착각이 들었다. 기사 아저씨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죽은 이를 데려가는 저승사자. 나를 제외한 승객들은 이승에서 이미 생을 마친 사람들. 나는 우연한 실수에 의하여 ‘지옥행 버스’에 탑승한 ‘생사람’이다.
저승사자에게 나는 이승에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생사람’이라고 얘길 해야하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의 ‘생을 마친 사람들’을 깨워 돌아가야 한다고 얘길 해야 했지만 맘처럼 쉽게 깨우진 못했다. 정말 이 버스가 라싸로 가긴 가는 것인지, 북쪽 지방에 ‘롸쏴’라는 도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됐다. 아직 팔월이지만 초겨울 같은 차가운 기운이 버스안으로 스몄다. 두터운 웃옷의 자크를 채우고,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당겨 오지않는 잠을 청해봤다.
도로위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를 겨우 확인하곤, 이 버스가 청두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한 ‘란쪼우’와 ‘시닝’을 거쳐 ‘골무드’를 통해 라싸로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버스를 이용하게 된 까닭은 ‘천장공로’의 기막히다는 풍경때문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닝’을 지나면서부터 고도는 2000m를 웃돌다가 어느새 3000m를 넘고 있었다. 감기가 걸렸는지 아니면 벌써 고산증이 찾아왔는지, 속은 울렁거리며 메스껍고 정신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유스호스텔의 다른 여행자에게서 받은 고산증 완화제를 출발하면서부터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었음에도 그런 증상이 나타나 감기인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그 ‘아줌마’가 팔던 액체 고산증약을 마시는 멀쩡한 사람들을 보며 몇 번을 후회했다.
어느새 버스는 아무것도 없는 주변풍경 속을 달리고 있었다. 고산사막이었다. 금방까지만 해도 간간히 억샌 풀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없어지더니, 산봉우리에는 눈이 쌓여있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8월임에도 녹지 않은 눈을 보며 앞자리에 앉은 중국인과 쇠약한 웃음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겨우 힘을 내어 창밖의 풍경을 사진찍어 봤지만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몸을 세우는 것조차 힘이들어 새우잠만을 허용하는 침대에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 오락가락 하는 정신의 끝을 잡았다 풀었다 했다.
앞자리의 중국인이 갑자기 나를 깨웠다. 버스 주변이 온통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 바로 눈을 감아버렸다. 손의 감각으로 시계의 고도계를 작동시켰고 힘들게 팔을 움직이고 눈을 떠 확인해보니 5000m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머리를 조금만 들어도,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올 듯 했다. 고산증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라싸에 가지 않아도 되니 낮은 곳으로만, 땅 아래로 구멍이 나 있다면 그 속으로 확 빠져버리고 싶은 충동까지도 느꼈다. 너무나 참기 힘들었다.
몸도 건강하고, 자전거 여행으로 심폐력 및 지구력이 많이 향상되어 나만은 예외일 줄 알았다. 도중에 식사를 위해 몇 번 정차하였지만 한번도 내리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앞에 앉았던 중국인은 나를 위해 무엇인가 가져왔지만 겨우 손을 흔들며 거부표시를 했다.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되는 날 자정이 넘어 앞 사람에게 몇시쯤 도착하냐고 물어보았다. 새벽 2~3시경에 도착할 것 같다고 얘길했다. 곧 죽을 지경인데 무슨 도착이냐 싶었다. 밤을 편히 쉬고 아침에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수많은 짐들을 들고, 죽어가는 몸으로 어딜 갈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2시쯤 되니 도시가 나타났고, 내리게 되었다. 다행히 몇몇 택시가 버스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하나의 택시에 모든 것을 실었다. 여행안내서를 꺼내들고 숙소마다 전화를 했다. 겨우 한 호텔의 빈방을 확인하고 그곳에 짐을 풀었다. 샤워를 하고 잠을 자려고 했다.
그제서야 몸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알아차렸고, 시계의 고도계를 보니 3500m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1500m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 고도였지만 그렇게나 차이가 났었나보다. 버스 안에서의 엄살 아닌 엄살이 스스로 우스꽝스러워 잠이 들기 전까지 피식피식 거렸다.
ㅎㅎ. 아 옛날이여구만…^^
ㅋㅋ 형님 만나기 전날이나 전전날쯤 될 것 같아요. 진짜 오래됐네요. ^^ 진~~짜 그 때가 그리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