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마셔야 하는 음료수, 너무 마셔 몸이 계속 늘어졌다.
어느 호텔에선 계속 아가씨를 부르라는데, 필요없어요!
길을 잘못들기도하고, 허리가방을 두고와서 수십키로를 돌아가기도.
휘발유 버너 사용 처음으로 성공.

 어느 소도시의 호텔에 묵고 있었다. 낮에 들어올 때 보았던 여직원이 문을 두드리고는 들어왔다.

“!@#^$^&&(^@#$ 샤오지에 @**&!!@%!”

“워 스 한궈런, 팅뿌동 쭝원”

“!%$^%$#&*(^%*$&^# 샤오지에 !@%!@%^&@^”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반복이 가장 심한 단어 ‘샤오지에’를 사전으로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뜻인 즉, ‘아가씨’다. 허탈하다. 배고픈 자전거 여행자에게 무슨 망측한 짓인가.

“뿌야오”(필요없어요)

하고는 내보냈다. 나가면서도

“@!$^#^&$@%&(%&*$%&#^@%@^&*(&$*%&^%$!^$(^$&*%#&$”

라는 말을 남겼는데, 나의 비상한 언어능력으로 판단해보니 ‘잠깐 왔다가는 것은 100원이고 내일 아침까지 있는 것은 300원’이라는 말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호텔의 투숙객 대부분은 ‘샤오지에’를 요청하나보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나가기 전에 왜 안 불렀냐고 의아해 했다. 이상한 호텔이었다.

 오르막 길 끝에서 갈증을 해소하고자 마셨던 물과 음료의 양이 많았던지 수분조절 실패현상이 일어났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힘이 없어졌다. 물을 조금씩 자주 마셔야 된다는 것을 스스로 누누히 강조했거늘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 수분조절을 실패했을 경우 계속 목이 마르다. 마시지 말아야 하는데 또 슈퍼마켓에 들러 음료를 사고 시원한 것은 시원할 때 먹어야 한다며 그만 다 마셔 버리고 또 후회했다.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하면 안된다고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은 해도, 슈퍼마켓이 눈앞에 나타난 이후부터는 두뇌활동이 정지한다. 그리고는 또 마시고 후회하는 것이다. 더위는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매우 더운 어느날 아침, 내가 왔던 국도길을 찾지못하고 작은 도시 안에서 한참을 헤맸다. 결국엔 시계에 내장되어 있는 나침반을 작동시켜 무작정 서쪽으로 향했다. 큰 도로로 이어질 것 같던 도로는 비포장 도로로 변하였다가 그만 끊기고 말았다. 끊겨진 도로 끝에서 왼쪽 멀리 바라보니 그 쪽에 끊기지 않은 도로가 하나 나 있었다. ‘아하~!’ 저 길이구나 하곤, 돌아 돌아 그길로 갔다. 제대로 길을 찾지 못했던 것을 우숩게 생각하며 신나게 밟았다. 그 길은 금방까지의 길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도로 양편에 가로수도 훨씬 빽빽했고 공기도 맑아지는 듯 했다. 심하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져 지겨움도 줄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니 서쪽으로 난 길이 서서히 북쪽으로 꺾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생각하여 바로 그전에 나타난 마을이름을 지도에서 찾아봤더니, 엉뚱한 길로 온 것이다. 사람들에게 왜 길을 묻지않았을까 후회해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길로 계속 가도 자유를 표방한 여행 크게 상관은 없는 일이었지만 계절에 따라 날씨변화가 심한 티베트의 입국 날짜를 맞추느라 어쩔 수 없이 서쪽으로만 진행해야 했다.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사용한 휘발유버너. 겨우 밥을 했다. 점심을 직접 할 수 있을 때부터 힘이 더 생겼다.
도시에서 멀어지자 아름다운 길이 나타났다.
반가운 차 밭도 보였다.
우리나라에선 경지정리로 사라지다시피 한 ‘둠벙’도 많았다. 농사에 있어 가뭄을 이겨내는 데 아주 지혜로운 요소다.
물을 가둔 인공 저수지. 오래된 덕인지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다.

 허탈한 마음과 공복감이 겹쳐지니 몇 배로 배가 고파졌다. 사실, 몇일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사먹지 못해 계속 고프긴 했다. 그래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고는 처음으로 밥을 해먹기로 했다. 나의 ‘버너’는 압력연료통에 의해 휘발유를 뿜어내고, 가열된 노즐에 의해 뿜어져 나오는 휘발유를 기체로 만들어 불꽃을 만든다. 그러니까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압력연료통에 압력을 높이는 일과 노즐을 가열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그 물건을 판 아저씨 말대로 한국에서 몇 번을 사용해보고 온 것이라 불을 피우는데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압력펌프를 연료탱크와 꼭 결합한 후에 펌프질을 하니 연결관을 통해 버너로 이동해야할 기름이 펌프 위로 솟구쳐 나왔다. 손과 얼굴에 기름칠 한 것은 당연한 일. 뭐가 문제인가 싶어 계속 살펴보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름이 반정도 도망갈 때 까지도 계속 펌프질을 해댔으니. 결국 사용설명서를 읽어보았고, 분해-결합을 해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펌프 내에 있어야 할 부품 하나가 빠져서 가방안에 들어있었다. 재결합하고 시도하니 거짓말같이 잘 되었다. 하마터면 나에게 한끼 밥도 못해주고 생을 마감할 뻔 한 버너에게 미안했다. 밟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나왔던 것이 부끄러웠다.

 한국인은 역시나 밥심이 중요하다. 삼겹살을 배 터지게 먹고도 쌀밥으로 마무리를 하지 않았다면 밥을 안먹었다고 하는 한국인. 나 역시 한국인이라 면이나 뭐 다른 종류의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든든하지가 않았는데, 그렇게 먹고나니 세상이 달라보였다. 그날 그런 생각을 내내하고, 하루를 묵은 숙소에서도 밥에 대해 너무나 감사함을 느꼈다. 아침도 손수 해먹고는 출발했다.

 몸에서 나오는 힘은 거짓말 같았다. 전날까지 어기적거리며 페달을 밟았는데 그날은 신이 한참 났다. 더운 날씨에도 밥심때문인지 쉬지 않고 30km를 넘게 달렸다. 평소같으면 10km 도 못가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먹었을 텐데. 신기한 일이었다. 스스로를 대견스러워 하며 들어간 슈퍼. 간식거리로 과자와 음료를 사고 계산하려는 순간.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절망감을 느꼈다. 지갑과 여권, 수첩과 사전이 든 허리가방이 허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숙소에 놔두었을 것 같은 예감이 들긴 했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어쨌든 그 속에는 다량의 현금과 현금카드, 학생증과 주민등록증, 여권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숙소에 없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왔던 속도보다 배는 빠르게 돌아갔다. 아니 거의 날 듯 했다. 돌아가는 중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이 만연했다. ‘진짜 숙소에 있었는데, 아저씨가 시치미 뚝 떼면 어쩌지’, ‘길 바닥에 혹여나 떨어뜨린 것은 아닌가, 그러면 끝인데’, ‘여권은 어떻게 다시 만들지’ 등등. 그러한 상상이 헛수고였다. 숙소에 가니 아주머니께서 고이 모셔둔 것.

 처음부터 하늘은 내게 너무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일어나기 힘든 일들을 여러차례 안겨주시니 말이다. 아무래도 ‘그’는 내 편이 아닌 것 같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이제 겨우 시작이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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