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다른 여행자의 구채구 사진집을 보곤, 바로 다음날 구채구로 출발
순환버스를 타고 가장 위까지 올라 걸어내려오는 방식
너무나 아름다워 탄성이 끊이질 않았다.
식사를 하고 돌아온 숙소에서 아저씨가 들고있던 ‘구채구’ 사진집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옥빛호수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호수 하나에서 다양한 색이 나오기도 하는 신비한 곳이었다. 넋을 잃고 바라보다 그곳이 청두시에서 그리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또,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라는 것도 알게되어, 휴식도 할 겸 ‘구채구’행을 결정했다.
중국인들은 ‘지우짜이꼬우’(주자이거우 풍경구)라고 부른다. 우리식으로 발음하면 구채구, 九寨溝, 寨는 티베트 마을을 뜻하는 말이고, 溝는 계곡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풀어보자면 ‘아홉 개 티베트 마을의 계곡’이 된다. 티베트 민족의 땅이라 대충 흘겨들어도 고산지역이라는 것은 예상을 할 수 있었다. 티베트 마을을 뜻하는 ‘채’, 아무래도 시가체, 라체 할 때 그 ‘체’를 따서 그렇게 지은 것 같았지만, 왜 중국발음으로 ‘체’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짜이’인지 이해가 가지않았다. 그들이 그런 뜻으로 그렇게 붙였다면 좀 더 비슷한 발음의 한자를 써야했을텐데.
다짐한 바로 다음날 출발했다. 보통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여행상품을 이용하지만, 무엇인가에 속박당하는 것은 거의 무조건 싫어하기에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다소 작은 버스에다 제일 뒷좌석 중앙자리라 불편했지만 처음으로 버스여행을 하는 것이라 즐거운 마음이었다. 청두시를 떠난지 1시간 정도가 지난 이후부터 줄 곧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내렸다. 시계의 고도계는 1000~2000m 를 표시하다 구채구가 닿기전에는 3000m를 넘기도 했다. 거의 12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그곳은 높은 고지대 답게 선선한 기운이 감돌았고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다음 날, 볼거리가 많다고 들었던 터라 아침일찍부터 서둘렀다. 걱정했던 비는 아침부터 갰고, 개방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입구에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구채구 순환버스에 몸을 싣고는, 긴장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설악산이나 지리산같이 어느정도 산행을 해야하는 곳으로 생각했지만, 순환버스는 고속으로 산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버스 창밖으로 기괴한 자연풍경은 ‘허~’하는 탄성을 내 뱉도록 했지만, 버스 안내양의 짧은 설명 뿐 멈추는 법은 없었다. 차라리 걸어올라가겠다고 마음을 먹곤 ‘시아처!’(하차!) 라고 소리치고 도중에 내려버렸다.
‘이런식으로 대충 구경하며 가는 것이라면 차라리 걷겠다!’ 내리는 나를 보고 안내원 및 승객들은 당황스런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거 아닌가. 마침 그곳은 이연걸과 양조위가 칼을 물에 살짝살짝 담그며 싸우던 영화 ‘영웅’의 배경인 곳이었다. 멋있긴 했지만 지나온 더 멋진 풍경들이 눈에 아른거려 아쉬움이 컸다.
버스에서 주운 안내소책자를 들고는 위를 향했다. 도중에 큰일의 신호가 와서 화장실을 찾느라 진땀을 빼곤, 구채구의 관람방법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가장 위까지 버스로 오른 후에 그곳에서부터 걸어내려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제서야 버스가 멈추지 않던 까닭을 알게 되었고 가장 위까지 오르는 버스를 타고선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에 내렸다.
고도 3000m 가 넘는 그곳에는 책을 통해 보았던 유라시아 북부지역의 ‘타이가’지형 같았다. 키가 큰 침엽수가 빽빽하고 땅에는 두터운 지의류가 깔려있었다. 허용된 곳만 사람들이 붐볐으므로 숲 안을 쳐다봤을 때는, 비온 후라 다소 습한 기운 때문인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곰이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 ‘앳지’의 배경과 비슷한 분위기였으므로 당장에라도 곰이 쉭쉭 거리며 달려와 한바탕 할퀼 것 같았다. 그럼 나는 동화책의 내용을 믿으며 어쩔 수 없이 죽은 척을 해야 했겠지.
그곳에서 조금씩 내려가니 더 높은 곳에서부터 출발한 계곡물을 만나게 되었다. 물소리가 너무나 싱그러우며 맑았다. 탁족이라도 하고픈 마음이었지만 물은 얼음물과도 같았고 그 곳 날씨가 이미 초가을 날씨였기에 엄두가 나지않았다.
중국에서 만난 계곡물은 언제나 흙탕물과 생활오수가 범벅된 더러운 물이었는데, 깨끗한 물을 만나니 너무나 반가웠다. 내려가면 갈수록 계곡의 폭은 넓어지며 유속이 느려졌다. 그러면서 조그만 못을 만들다가 결국엔 큰 호를 만들었고, 어느 곳에서는 그 넓은 호의 물이 일제히 떨어지며 넓고 높은 폭포를 이루었다.
물이 깊어지면 질수록 물의 빛깔이 확연해 졌는데, 칼슘이 많이 섞여 있다는 그 물은 옥빛 그 자체였다. 투명한 옥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사진으로 담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작은 사진 속에 담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것도 맑은 공기와 새소리, 투명한 물소리와 어우러진 풍경을. 쭈그려 앉고, 엎드려 보기도 하고, 나무위에 올라가보기도 하면서 담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음날도 그곳으로 향했다. 하루만에 그곳을 느낀다는 것은 억지고 그저그냥 둘러보기도 벅찼다. 그래서 그런지 표는 이틀동안 유효했다. 전날보다 더 이른아침, 문을 개방하자마자 들어가 전날 보지못한 곳을 둘러보았다. 바람이 잔잔해 넓은 호수의 물도 잔잔했다. 그곳으로 비친 이른아침의 푸른하늘과 햇볕을 막 반사하고 있는 초록빛의 나무들은 나의 감정선을 쥐어짰다.
걷고 걸어도 기괴하리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계속됐다. 감동, 감동, 감동. 그것을 편하게 보면서도, 산 깊숙이까지 도로가 뚫어져 있고, 그것으로 인해 아름다운 풍경이 상당히 훼손된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처음보는 놀라운 자연경관에, 지구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구채구(주자이거우) 여행사진 모음
* 구채구 여행기는 ‘티베트편’으로 넣었습니다. 행정구역상 사천성이긴해도 티베트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