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낭’이라는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고도는 이미 3000m 를 넘었고 식생은 어느순간엔가 침엽수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입고있던 옷도 처음엔 반바지를 입고 출발했지만 긴바지에 긴팔을 입고 있는 상태. 티베트에서 네팔로 넘어올 때 고도에 따라 갑자기 식생이 바뀐다는 것을 느꼈었기에 이번에는 그 식생이 바뀌는 곳을 사진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도 모르게 갑자기 확 바뀌어 버린 것이다.
빽빽하게 자라있는 열대성 식물들도 아름다웠지만 드넓게 펼쳐진 침엽수림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길을 가면 갈수록 고도를 조금씩 올라가면 갈수록 침엽수는 듬성듬성 솟아났고 조금씩 키작은 관목들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아쉬운 만남이었다.
결국, 마낭이라는 마을이 가까워오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고도는 3500m 정도. 큰 마을이라 그런지 숙소도 좋았고 사람들도 많았다. 숙소주인은 티베트계 아저씨였고 직원들은 그의 조카들. 생긴게 완전히 한국사람이었는데 만약 이 사람들이 한국에 간다면 외국사람이라고 의심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중국사람은 중국특유의 느끼함이 얼굴에 묻어나고 일본사람은 한국사람과 확연히 틀린 어벙함?이 얼굴에 흐르는데 이 곳 사람은 그런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 역시도 이곳사람 같이 생겨서, 이 곳을 지나치고 난 후의 일이지만 검문소에서 ‘가이드’냐고 물어봤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한국, 일본, 중국, 티베트, 네팔, 몽골(아마도) 에 가면 자국민이라고 생각한다는 예상)
마낭에서는 고산병 증세가 조금씩 나타나는 지역이었으므로 사람들은 이곳에서 하루씩 묵고 떠났고, 그 사실을 알게된 나역시도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티베트에서의 고산적응 때문이었는지 아무이상도 없긴 했지만. 그리고 그곳에서 부터는 눈도 내리는 데다가 날씨도 많이 추워져 두꺼운 바지와 점퍼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잠을 잘 때도 옷도 입고 숙소에서 얻은 담요도 덮고 잤다.
마낭의 다음 마을은 ‘뜨롱페디’ 라는 마을로 고도는 4500에 이르고 그 마을은 ‘뜨롱라’라는 5416m의 고개를 바로 앞둔 마을이었다. 당연히 높아진 고도로 인해 ‘뜨롱페디’마을까지 가는데에도 너무나 힘들었다. 뭐 주변의 침엽수림이 사라진 것은 당연하고 조금씩 나타나던 조그마한 관목들도 사라져 갔다. 공기는 희박해져 갔고 걸음을 걷는데도 자주쉬어 가야할 만큼 숨이 찼다.
겨우겨우 도착한 뜨롱페디. 그곳 식당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그런데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들어왔다. 머리는 레게머리에 기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순간 굉장히 멋진 여행자라고 생각하고,
“승진아, 저 사람 한국사람 같지?”
그런데 승진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더니 그에게 터벅터벅 걸어가 이렇게 말했다.
“한국 분이시죠? 언제오셨어요?”
하지만 그는 아무말이 없었다. 그리고 상황을 직감하곤 승진이는 무안한 표정으로 살짝 뒤돌아 봤다. 나는 크게 웃으며,
“그러게 왜 그랬노!! 하핫”, “아임쏘리~~”
그 역시 그곳의 ‘원주민’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그 집 주인이고 그는 쌍둥이 형제 중 동생. 너무나 한국인 같아 도무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그곳 산장 주인아저씨 역시 한국의 푸근한 아저씨처럼 생겼다. 동물가죽으로 만든 털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완전 몽골의 유목민 같았다.
“아저씨 모자가 꼭 몽골의 유목민 모자 같아요!!”
“몽골의 친구가 준거야”
“뜨아…”
보통사람들이 이정도의 고도에서는 고산병을 겪기 마련인데 티베트에서의 적응때문이었는지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걸을 때만 다소 숨이 찼을 뿐.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 중에는 두통과 미식거림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불안한 나머지 마늘수프를 시켜서 먹었다.
이곳에서의 마늘은 고산병에 직통하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고, 정말 직통했다. 속이 좋지않아 저녁으로 빵을 먹었다. 손을 몇일동안이나 씻지않았는데 그 손으로 먹은 탁인지 빵을 먹은 몇시간 이후부터 속이 안좋아지더니 몸살기운이 감도는 것이었다.(손을 제대로 씻을 수 없어 손가락에 묻은 빵의 쨈을 쪽쪽 빨아먹은 탓인 것 같다.) 역시나 다음날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승진이가 방으로 뛰어와서는 잠깐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식당에 가보니 먼저 출발한 세바스찬과 앨리스가 있었다. 그들은 어퍼피쌍에서 만나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캐나다 부부였다.
“세바스찬!! 가지 않았어요??”
“고산 적응 때문에 하이캠프에 짐을 풀었는데, 앨리스가 자꾸 체스판이 기울어진다고 해서 내려왔어. 내일 한번에 넘어가려구”
“아… 그렇게 심했나요? 걱정되네요. 앨리스 괜찮아요?”
“응,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그런데 위에선 체스판은 기울어지는데 말들이 쏟아지지 않아서 신기했다니까!”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