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에서 인도로 가는 길. 오르막이었다가 내리막이었다가 또 길은 얼마나 구불구불한지!
마지막으로 본 설산. 저녁 어스름에 설산은 빛났다.

처음의 여행계획에 인도는 빠져있었다. 티베트를 건너 자전거 여행자들 사이에서 대단히 유명하다고 하는 티베트와 파키스탄을 잇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는 것이 최초의 계획이었으니 인도는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계획은 티베트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영향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차가운 날씨 때문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주행을 못할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게된 네팔, 그리고 인도. 인도에 관해서는 아는바가 거의 없다. 다만, 인도사람들 중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류시화님의 인도 여행기 ‘지구별 여행자’와 ‘하늘호수 위로 떠난 여행’ 을 읽은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 이외엔 모두들 알고있는 것과 같이, 땅은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크지만 인구는 10억이나 된다.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등 많은 종교들이 인도에서 발생했고 또, 다른 종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세계 주요 문명발상지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발상한 곳 등이다.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결국엔 인도로 모여든다는 소문?이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 좋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다신 오기싫다고도 하는, 인도만의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여행안내책자 첫 부분에 ‘인도여행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압축되어있고 터무니없는 나라는 영감과 절망, 스릴과 당황을 한번에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 나와있다. 준비를 거의 하지않은 상태로 오긴 했지만, 인도에 대한 기대는 지금까지의 여행의 기대를 넘어선다. 모두 들어본 얘기일테지만, 수면제나 독약이 든 물이나 차를 받아마신다거나 납치가 되어서 사지가 잘려 서커스단에 팔리는 일만은 없길 바랄 뿐이다.

네팔에 있는 동안 여행계획을 세웠다. ‘어디를 가볼까. 자전거로 가는 여행이니 복잡하게 돌아가는 길 말고 쑹~쑹~ 가면서 여행하는 길을 찾아보자. 지도를 보자… 인도 북부지역의 인더스 강이 흐르는 광막한 충적평야지대를 제외하면 인도 중남부 지역 대부분이 데칸고원이라고 불리우는 산악지역인데.. 흠!! 다행히 해안선을 따라서는 초록색으로 되어있는 평지인 것 같다. 그리고 유명 관광지도 해안선을 따라서 많이 모여있으니 해안선을 따라 인도를 일주하자!!’

그리고 거리를 대강 계산해보니 수천키로가 넘는 거리였다. 또, 아니나 다를까 6개월 비자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계획을 세웠는데 3개월 단수비자만 덜렁 내줄 뿐이었다. 그래서 일주는 못할 것 같고, 반주만.^^ 네팔을 떠나 첫번째 기착지는 힌두교 최고의 성지 ‘바라나시’, 인도 동쪽 거대도시 ‘꼴까따’, 최대한 남쪽으로 내려가서 인도반도를 횡단하고, 볼리우드 영화의 고향 ‘뭄바이’를 거쳐 북쪽으로 선회,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불리우는 ‘자이뿌르’, ‘아그라’, ‘델리’를 여행한 후 파키스탄.

비가 내린 몇일 전 이후로 계속 안개가 끼고 쌀쌀한 날씨가 계속 됐었는데, 내가 출발할 것을 미리알고 있었는지 하늘은 안개는 커녕 일출 직후로 따뜻한 햇살을 뿌려주고 있었다. 밀린 엄청난 방값을 내고(물론 우리나라 3~4일치 여관비 밖에 안되지만 -.-), ‘죽돌이’ 생활을 청산, 카트만두를 빠져나왔다.

길은 카트만두 외곽에서부터 오르막이었고, 곧 내리막길이 나왔다. 그리곤 또 오르막. 두어달 동안 무거운 짐을 달지않고 주행한 탓인지 두 다리는 많이 힘겨워 했고 가끔씩 저려왔던 나머지 하나의 다리도 빨리 저렸다. 얼마 오르지 않은 오르막이 끝나고 급한 내리막을 한참 내려갔는데, 카트만두가 고지에 위치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다시 오르기 시작한 오르막길. 주변엔 온통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산들이 많은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싶었지만 산 능선, 골짜기 할 것 없이 계단식 논밭을 일구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네팔의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것을 좀 안타까워 했었지만 이 산골에 무엇인가 산업을 일으켜 세우기도 힘들어 보였다. 

산길은 점점 깊어져만 갔고 목표했던 마을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은 늦어져 갔고 해는 서산 넘어로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마을 아저씨에게 거리를 물어보니 터무니 없이 수십키로는 가야한다고 말했다. 분명 지도상으로는 50km 내외의 거리였지만 아마 구불구불한 산길이라 그런 것 같았다. 산중에서 야영하기엔 뭔가 2% 부족하고, 비상식량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여서 히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산을 오르는 트럭에 대고 손을 들었는데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세워주었다.

트럭으로도 한참을 오른 후에야 시야가 훤이 트였고 멀리엔 히말라야 고산들이 들어났다. 포카라에서 바라보던 것 보단 못했지만 카트만두에서 보이던 희미한 산보다는 훨씬 멋있었다. 아니, 포카라에서 너무 선명하게 보이던 것 보다 조금은 희미하게 보이는 이 곳이 더 좋았다. 해가 서산 넘어로 가고 있었기에 태양은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고, 그에 비친 히말라야 역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트럭은 오르막길을 정말이지 한~참을 올라갔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전거로 갔다면 그날 오르는 것이 불가능했을 거리였다. 

완만한 내리막을 또 한참을 내려가고 그리고 또 오르막을 잠깐 오른 뒤에 차를 세워주웠다. 마을은 금방 지나쳤는데 어두운 곳에 멈춘 이유를 물어보니 호텔이 이곳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을 가만히 돌아보니 오솔길 넘어로 불빛이 보였다. 돈을 얼마나 주면 되냐고 물어보니 돈을 안받는다고 했다. 자전거를 태워줬으니 많은 돈을 요구할 것 같아 조금은 걱정했는데 돈을 받지않겠다니! 역시나 네팔사람이었다. 지갑에서 100루피를 꺼내 밥먹으라고 주머니에 찔러주고는 나는 호텔로 향하고 아저씨는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그 지역 이름은 ‘다망’이라는 지역으로 히말라야 전망이 좋기로 소문이 난 곳 같았다. 차를 타고 지나오면서도 전망에 놀랐기에! 그리고 내가 간 그 호텔은 전망 좋은 지역에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는 비싼요금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보이지도 않는데 요금은 무려 미국돈 80$ 였다. 우리돈으로 8만원이나 하지않나!! 너무 비싸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여기서 싸게 좀 잘 수 없냐고 애걸해봐도 50$ 이하로는 안된다고 했다. 말도안되!!(No way!!) 하고는 나와버렸다.

마지막으로 봤던 마을로 다시 내려가니 여러가지 숙소가 있었고 약간은 깨끗해보이는 숙소로 들어갔다. 역시나 관광지라 그런지 가격은 800루피로 우리도 만원이 조금이 넘었다. 보통 네팔 숙소가격이 200루피인 것을 감안하면 겁나게 비싼 가격! 그래도 달도 없고 가로등도 없는 산길인지라 더 돌아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곳은 2000m 정도되는 고지였다. 낮에는 히말라야를 보기위해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곳이다.(물론 그 시기엔 관광객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7시 정도. 히말라야는 커녕 몇미터 앞 나무조차 확인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말도 안되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늘에 별들이 모래사장 문양을 하고있는게 아닌가. 티베트에서 겁나는 별밤을 느끼고 싶었지만 매번 실패했고, 안나푸르나 산행 때는 밝은 달 때문에 별밤은 완전 물건너 갔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낯선 이곳에서 이렇게 많은 별을 보다니!! 수없이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아껴둔 소원을 빌었다.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시작된 오르막, 내리막 지옥.
산 곳곳에 집을 짓고, 밭을 일구어 살고 있었다.
우리나라였다면 당연히 숲이었을 땅, 가파른 비탈에도 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었다.
산을 몇 번을 넘는 힘든 순간에도 눈에 들어오는 건, 사람들의 삶.
네팔의 국경도시 비르간지에 도착했다. 인도의 영향 때문인지 사람도 많고, 릭샤도 많았다.
티베트에서 온 듯한 삼보일배 수행자.
자전거로 오며 투덜거렸던 나 자신을 반성합니다.
네팔 비르간지에서 마지막 사진. 릭샤꾼 아저씨.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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