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유명한 피사의 사탑. 역시나 그곳까지 가는데 평소보다 몇배의 힘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손에 난 두드러기가 완전히 낫지 않았고 뭔가 체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타 도시에 비해 비교적 현대화 되어 있던 도시는 ‘피사’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공장지대가 많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중심을 흐르던 하천에서는 심각한 냄새까지 나 기분이 좋지않았다. 겨우 찾아간 야영장에서 한참을 뻗어있었다. 그 날이 여행을 시작한지 1년이 되는 날이었음에도 아픈 몸 때문에 제대로 축하를 할 수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나른함이 온몸에 흐르고 있었다. 피렌체에서의 휴식을 충분히 했기에 2~3일 주행은 거뜬히 해 내야함에도 그렇지 않았다. 몸에 뭔가 많은 문제가 있었다. 아침을 먹고 사탑을 보러갔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탑이 놀라웠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사진으로 보던 것을 그냥 현장에 있었다는 느낌 뿐. 탑은 어찌나 새 것 같은지, 수백년 됐다는 얘기가 거짓처럼 느껴졌다. 다시 돌아와 잠을 잤다. 그러다가 이렇게 더러운 도시에서 머물기보다는 약간 떨어진 ‘루카’에서 쉬는게 좋겠다 생각했다.
아침에 기념사진을 찍지 못해 다시 피사의 사탑에 들려선 사진만 찍고, 내가 가야할 방향으로 들어섰다. 루카까지는 평길인줄 알았건만, 도중에 가벼운 오르막길을 만났다. 몸 상태 때문인지 그 오르막도 천리만길처럼 느껴졌다. 겨우겨우 도착한 루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마을이었다. 보통은 성 밖 마을이 더 크기마련인데 그곳은 성이 커서 그런지 큰 성곽내부에 집들이 촘촘했다. 늘 하던대로 관광정보센터에 들려선 유스호스텔과 야영장의 위치를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가까운 곳에 유스호스텔이 있었다. 그러나 찾아간 그곳에선 불행히 자리가 없다고 했다. 근처에 야영장이 없다고 해서 유스호스텔에 희망을 걸었건만 어쩔 수 없었다.
몸은 좋지않은데 어디론가 가야만 했다. 처량한 자전거 여행자의 현실. 앞으로 가야할 방향으로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이 때 만큼은 아무 여관이라도 들어가서 편히 쉬고 싶었다. 하지만 유스호스텔만큼이나 저렴한 숙소에 들렀으나 자리가 없다는 허무한 대답이었다. 페달을 밟아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자전거를 타다 끌다를 반복한 끝에 결국 해안까지 갔다. 지도에 야영장 표시가 그 해변에는 밀집대형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도 그럴것이 야영장 이정표의 화살표가 오른쪽 왼쪽 어디를 가야하는지 고민해야할만큼 많았다. 그럼에도 한참을 달려 해가진 후에 야영장에 도착했다. 불과 50km정도를 주행했을 뿐인데 극도의 피로감은 물론 발바닥 곳곳이 완전히 갈라져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초대형 야영장을 절름발이로 겨우겨우 가로질러 도착한 샤워실. 무슨 수작인지 12유로나 되는 돈을 받고도 샤워하기 위해서는 50센트를 또 내야했다. 쌍욕을 내뱉고 다시 돌아가 돈을 가지고 카운터에서 ‘코인’을 구입하고 겨우겨우 ‘따가운’샤워를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충분히 휴식을 해야한다는게 전날의 생각이었지만,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그곳에서 죽치고 있을 수가 없어 길을 나섰다. 손의 두드러기는 더욱 더 기승을 부렸고 체력저하로 평소의 속도도 내지못했다.
길은 완전히 평길이었다. 오른편으로는 높은 산들이 어깨를 맞대어 기다란 산맥을 이루고 있었지만 왼편으로는 수평선이 짙게 보이는 해변이었다. 백사장은 그리스에서 봤던 평온하고 조용한 것과는 틀리게 가게들이 촘촘하게 백사장과 평행으로 늘어서있었다. 자전거를 계속타고가다 보니 백사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가게들 중 하나는 분명히 통과해서 들어가야했고 백사장에도 칸막이로 서로의 영역을 구분시켜 놓았다.
자연을 인간의 소유로 만들어 그것을 통해 이익을 낸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문제긴 했지만, 20km에 가까운 백사장을 그런 가게들이 나누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한 충격이었다. 가끔씩 ‘무료해변’이라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표지판이 있는 백사장도 있긴했지만 그곳은 신발을 벗고선 제대로 발을 딛을 수도 없는 날카로운 바위가 널린 곳이었다. 선진국이란 것이 다 헛소리같이 느껴졌다.
20km를 겨우겨우 주행하여 생각지 못한 유스호스텔에 도착했다. 기존 계획은 ‘LA SPEZIA’ 까지 가서 ’Cinque terre’라고 하는,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기암절벽지대를 여행하려 했었다. 거리도 그곳에서 30km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몸상태가 거의 최악을 달리고 있었고, 유스호스텔 숙박료도 다른 곳과 비교도 안될정도로 쌌기 때문에 그곳에서 요양을 하기로 결정했다. 몇일간 육류섭취를 제대로 못했던 탓인가 싶어 슈퍼마켓에서 700g 정도의 돼지고기를 사선 해안가에서 혼자 구워먹었다. 속이 든든해져 그럼 낫겠지 생각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더 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딛으려고 하는데 오른쪽 골반에서 심각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루 적게 주행하고 저녁에 고기를 먹고나면 낫겠지 했던 것이 더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손을 비롯하여 몸 곳곳에 두드러기가 퍼진데다 이제는 골반의 통증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식량을 살 겸, 몸을 좀 움직이면 낫겠다 싶어 자전거를 타고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그랬더니 오른다리는 제대로 뻗을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하루를 그냥 보냈다. 그 다음날은 괜찮아지겠지 했던 것이 별 변화가 없었다. 결국 약국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는 발의 갈라짐과 두드러기, 골반통증에 대한 약을 샀다. 예상한대로 엄청난 가격을 요구했다. 발의 갈라짐과 두드러기 약은 쓰나마나였고, 골반통증에 대한 약으로 구입한 아스피린은 신기하게도 먹은지 몇시간 지나지도 않아 통증을 감추어버렸다.
그곳에서 4일을 보냈다. 상업화로 짙게 물든 해변이라 그곳에서 바다와 함께할 수 있는 일도 없었거니와 반대편엔 산에서 캐온 대리석을 가공하는 곳이 즐비하여 뭔가 구경할만한 것도 없었다. 그 덕분에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좋은상태도 아닌 날들이었다. 괜히 그런 상태에서 엄살을 피우는 것 같았다. 그 즈음에는 발바닥 갈라진 곳에서는 조금이라도 잘못 딛으면 피가나오기 일쑤였고, 손바닥 마디마디, 손금 마디마디가 갈라지고 피가나기 시작했다. 돈 때문에 병원에 갈 용기도 나지않고, 약국에서 받아온 약으로는 치료가 불가능 하였다. 갈라진 틈새마다 밴드로 도배를 한 뒤 4일째 되는날 출발했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맞춤법도 안고쳤습니다. 책이 절판되어 글과 함께 사진을 더 붙여서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