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삶을 꿈꾸던 우리 부부는 아기가 생기면서 출산을 스스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스스로 출산을 하지만 오직 사람만이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데 의문을 던졌죠. 출산에 대한 공부와 깊은 고민 끝에 결국 실행했습니다.
하하농장의 첫번째 ‘하’의 주인공 모하는 2013년 12월 17일에 작은 시골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건강하게 낳았고, 9살인 지금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다큐를 만들고 싶어서 영상도 찍고, 글도 써 놓았으나 결국 제 때 쓰지 못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서야 글을 꺼내 놓습니다. (그 때 써 놓은 글을 아주 살짝만 수정했어요)
글 목록
아기가 병이 아닌데 왜 아기가 생기면 병원에 가죠?
귀농을 하기 전 전국을 떠돌며 여행을 했다. 어디로 정착할 지 그 어떤 것도 정하지 않은 채 마냥 떠돌아 보았던 것. 혹여나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그 상태 그대로 정착하겠다는 나름대로의 로맨틱한 목표도 가지고 있었다.
한번은 전 직장 선배가 귀농 후 직접 집을 짓고 있다는 얘길 듣고 찾아갔다. 어차피 떠돌던 신세여서 집짓는 일을 도우며 배우며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그 선배는 아기가 둘이 있었는데 둘 다 조산원에서 출산했다. 첫째 아기는 병원에 두어번만 갔고, 둘째 아기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 때까지도 아기를 낳을 건지 않을건지, 어떻게 어디서 낳을건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순수 백지상태였다.
그런 출산 백치에게 “아기가 병이 아니잖아요?!”, “왜 아기가 생기면 병원에 가죠?”라는 말을 던졌다. 병원은 병이 생기면 가는 곳인데 아기가 생겨도 자연스레 병원을 찾는다. 이상하다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정말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 전까지 관심도 두지 않았던 ‘출산’이 머릿속에서 번쩍하고 빛이 났다. 아기는 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기를 밴 순간부터 병원에 드나들고 출산 때도 병원의 도움을 받는다. 따져보면 산부인과는 병원이기는 해도 현대적인 조산원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기 때문이기는 하다.
임신 후 시작된 본격적인 고민, 어디서 낳을까?
아기는 적절한 시기에 찾아왔고 우리는 어떤 출산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했다. 임신 전에는 ‘자연출산’이 꿈이었다면, 이제는 장소가 문제였다. 조산원에서 낳느냐, 집에서 낳느냐? 거기에 더해 병원 진료는 정말 받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도 결정해야했다. 이 고민은 나보다 유하가 더 깊이 했는데 본인의 뱃속에 생겨난 아기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임신테스터기에서 두 줄이 표시가 된 걸 보고 임신인줄 알지 내 몸에선 어떠한 생리적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아기가 생기는 일은 ‘병’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병을 고치는 ‘병원’에는 가지 않는 것으로 잠정 결론 지었다. 그럼 출산은 조산원에서 할 것인가? 집에서 할 것인가? 사실 임신 초반까지만 해도 가정출산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못했다. 나도 집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에겐 피치못할 사정-누나 세 명에 이어 또 딸을 낳으면 시어머니께 혼이 날까봐-이 있었다.
(주의:고위험군 산모는 의료조치가 필요하므로 반드시 의사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첫 출산부터 집에서 낳을 생각은 없었다. 당연히 조산원에 가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있는 봉화 주변 지역에는 조산원은 차치하고 출산할 수 있는 산부인과도 없었다. 안동까지 나가야 겨우 출산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장모님이 계시는 의정부 쪽에 가서 낳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었다.
이 문제는 아내 유하의 의견이 결정적이었다. 내가 아무리 어떤게 나을 것 같다 얘길해도 본인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다. “의정부에서 낳으면, 아기 낳기 전부터 가 있어야 하고, 아기 낳고 나서도 최소한 백일은 못움직일텐데 괜찮겠어? 시부모님들도 그 때까지 아기를 못볼텐데…” 그 말인즉 아기 낳기 전후로 친정에 가 있으면 나도 처가댁에 계속 머물며 뒷바라지를 해야한다는 것이고, 부산 부모님들은 잘 볼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처가댁도 사실상 가족의 집인 것이지만 계속 머무는 건 나도 불편하다. 일 때문에 집에 혼자 내려가 있다면 오랫동안 못볼 수도 있었다. 유하는 덧붙여 “이 때 아기는 매일매일 변할텐데 그걸 못보게 되면 정말 아쉽지 않아?” 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불편에도 불구하고 아기 엄마가 최대한 편하게 낳을 수 있는 곳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유하는 되려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보게 된 가정출산 영상들, 우리도 가정출산 하자!
가정출산을 결정하기까지 이런 고민으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이 와중에 유하는 가정출산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나섰는데 국내에는 정보가 거의 없었고 외국에는 사례가 많았다. ‘Home birth'(가정출산)나 ‘unassisted birth'(도움없는 출산)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상상도 못했던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가정출산 동영상도 많이 올라와 있었는데 나로선 충격 그 자체였다. 이따금씩 tv에서 보았던 모자이크 너머의 출산장면이 아니라 아기가 나오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다 보여주었다. 게다가 아기를 낳는 장소가 수술실 같은 분만실이 아니라 그들의 집이었다. 아기엄마 아기아빠 둘이서만 낳는 경우도 있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막 나오고 있는 아기의 오빠나 형인 아이들도 보고 있는게 아닌가. 화면속 그들은 진정 출산을 병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큰 잔치처럼 여기고 있었다. (조산사가 돕고 있는 가정도 많았다) 병원에서 낳았다면 아기는 나오자마자 의사나 간호사 손에 들려 입안 이물질을 빼느라, 숨을 쉬게 한다며 거꾸로 들고 때리느라, 예방주사를 놓느라 정작 산모는 아기를 제대로 안아도 보지 못하는데, 가정출산을 한 그들은 아기가 나오자 마자 감동에 겨워하며 “my baby!”하며 끌어안았다. 자궁을 빠져나온 아기를 그대로 끌어올려 안고서 ‘마이 베이비’하는 장면은 그 어떤 영화보다 감동스러웠다.
이 신비한 영상들을 보면서 징그럽다거나 위험하다는 생각이 전혀들지 않았다. 아기들이 나오는 그곳은 새 생명이 태어나는 무지무지하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곳이며 실제로도 정말 아름다웠다. Tv로 봤던 출산장면은 꼭 수술장면 같아서 징그럽게 느꼈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유하는 이런 영상을 며칠이나 뚫어지게 찾아봤다. 나는 유하가 골라주는 영상들만 집중적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거의 결론에 다다랐다. “우리도 가정출산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