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펑크나는 자전거, 펑크는 귀찮기는 해도 쉽게 수리가능
그런데 변속기 케이블이 끊어지다.
도착한 대도시 우한. 분지지역이라 너무 더웠다.
겨우 자전거를 수리하고 출발했지만, 짐받이까지 부러졌다.
그리고 또 펑크. 계속되는 자전거의 수난.

이렇게 울창한?도로를 만날 때마다 너무나 상쾌했다.
수십년은 된 가로수들.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선 거의 사라진 소를 이용한 농사. 소와 함께 논을 갈고 있었다.
이런 기계도 있었다.

 벌써 펑크가 두번이나 났다. 펑크가 났을 때는 다행히 별로 헤메지 않고 튜브를 교체하고 문제가 있을 것 같아 타이어도 교체했다. 예비타이어로 준비해간 타이어가 좀 약해보여서 불만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탈만은 했다. 비를 많이 맞고 제대로 기름칠을 하지않아 체인과 여러 나사가 녹이 슬어버렸다. 하지만 주행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한으로 향하는 마지막 내리막을 내려가고 있을 때, 속도를 좀 더 내보려고 앞변속기 레버를 올렸다. 이상하게 힘이 받지않고 느슨하게 슥 눌러지는게 아닌가. 놀란 나머지 풍만이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는데.. 아니 이런!! 레버와 변속기를 연결하는 케이블 보호피복이 벗겨져 있는 것이었다!!

 이 케이블 보호피복은 핸들이 꺽어질 때 여유공간이 생기도록 굽어진 상태로 유지가 되지만 내부의 케이블은 굽은 그 속에서 그대로 팽팽하여 변속이 가능한 것인데, 피복이 벗겨지면서 굽은부분 밖으로 케이블이 튀어나와 변속기로 가야할 힘이 피복밖으로 삐져나온 것이었다. 다행히 응급처치용으로 들고간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벗겨진 부분을 묶었다. 그랬더니 거의 정상적으로 작동하긴했지만 언제 또 풀어질지 모르는 상태라 불안불안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새 케이블을 구해 교체하는 수 밖에 없었다.

  오전 일찍 도착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더위 때문에 힘이빠져 정오가 조금 지나서 우한의 경계를 지나칠 수 있었다. 넓고 잘 닦여진 도로가 단번에 우한의 경계를 통과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거대한 고급호텔, 호화 아파트, 고층빌딩 등이 나타나 상당히 놀랐다. 깨끗하고 싼 숙소를 찾기위해 2~3시간을 헤맸는데 번화된 거리는 끝이 없다.

당시엔 듣도보도 못했던 도시였지만(지금은 너무 유명하지만) 정말 거대했다.
우한의 랜드마크, 황학루.
밤에 바라본 황학루. 기가막히게 멋졌다.

 漢口한커우, 漢陽한양, 武昌우창 이렇게 세개의 도시가 1950년대에 합쳐져 武漢이라는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5번째로 큰 도시고 인구는 87년도 자료에 360만명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의 북쪽과 남쪽의 중간지점에 있고 동쪽과 서쪽의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수로든 육로든 교통의 요충지라고 한다.

 이런 자료가 아니더라도 거대도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거리엔 끊임없이 사람들이 보행하고 여기저기에 초고층빌딩들이 즐비하다. 지금의 인구는 내가 생각컨데 최소500만 이상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도시의 규모는 내가사는 부산의 3배 이상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長江大橋창장따치아오(장강대교) 에 올라 장강의 저편 그러니까 우창에서 한코우 방향을 바라보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이편에도 초고층빌딩들이 즐비한데 건너편에는 더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곳의 더위는 지금까지의 내가 느껴온 더위 중 최악이었다. 대구가 덥다고 하지만 이곳보다 더 더울까. 최저기온이 29~30도이고 최고기온은 36,7도~40도 까지 치올랐다. 한국에서는 덥더라도 살살 걷고 그늘에서 쉬면 한 낮이라도 참을만 한데, 여기는 10m만 걸어가도 팔뚝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십분정도 걸어다니면 팔에 있는 땀을 팔을 흔들어 털어내야할 정도다. 옷이 젖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그런지 상하이에서도 윗옷을 벗고 활보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는데 여긴 더 많았다. 그래도 상하이에선 젊은 사람들은 자제를 하는 편이었는데 여긴 젊은사람 늙은사람 할 것 없이 다 벗어서 옷을 어깨에 걸치고 다녔다. 그리고 웃긴 것은 데이트를 하는 남자들도 여자친구가 허락을 했는지 윗옷을 벗어제치고 다녔다.

 너무 더워서 관광을 못했다. 군대처럼 야외활동 가능 온도지수가 있다면, 이곳의 온도지수는 야외활동 절대금지다. 햇볕이 조금이라도 피부에 닿으면 따가울 정도.. 저녁을 먹으면서 식당직원에게 ‘너무 더워요’라고 하니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한 곳이 우한이라고 했다.

강변에서 더위를 식히는 시민들
다리 아래에선 물놀이가 한창이었다. 너무 위험해 보이기도…
우한의 일몰
강변도로
우연히 들른 야시장. 엄청나게 많은 인파들이 서늘한 밤을 즐기고 있었다.

 우한에는 고급자전거를 취급하는 곳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들어가던 첫날 ‘GIANT’ 라는 고급자전거점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세째날 자전거를 고치러 그곳에 들렀는데, 가게 내부는 고급자전거는 없고 일반자전거와 전동오토바이 뿐이었다. 주인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없단다. 그리고 하는 말이 앞으로 1km 정도만 가면 무슨 가게가 있단다. 알아듣지 못해 지도를 펴 보이며 찍어보라는 시늉을 했지만 그냥 방향을 가리키며 가보란다.

 그 가게가 거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없다니.. 너무나 허무했다. 아저씨가 가보라는 곳은 솔직히 어딘지도 모르겠고 또 난 그 방향에서 왔고 그런 가게를 보지못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왕빠에 가서 우한의 가게를 찾던가 아니면 한국의 친구에게 부탁하여 공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망연자실하여 이동하고 있는 중에 백화점 내부에 자전거가 많이 걸려있는게 보이질 않는가… 앗!! 저긴가보다 하고 들어갔더니 그곳이 맞다. 내부에는 고급 MTB와 사이클이 많이 있었다. 고칠 수 있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그곳에 있던 젊은 기술자가 풀고 조이고 바꾸고 하더니 금새 고쳐져 버렸다. 큰 일이 난줄로만 생각해 상당히 불안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거였다니!! 그렇게 고치고 그냥가기가 미안해서 타이어 두개를 사고는 나왔다. 

 그것으로 풍만이의 수난은 일단락된 줄 알았다. 일요일 아침 출발하려고 짐을 정리하고 짐을 싣기전 혹시나 망가지거나 나사가 느슨한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뒤쪽 짐받이의 뒤쪽부분이 부러져 있는게 아닌가! 어떻게 금속으로 만들어진 이것이, 그리고 용접한 부분도 아닌데 이렇게 부러질수가! 대만제지만 일본상표의 제품인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짐받이가 부러졌다. 이럴수가. 우한 시내의 자전거 전문점에서 다행히 바꿀 수 있었다.
다른 자전거에서 떼내어 붙였다. 저 짐받이로 끝까지 갔다. (후에 앞 짐받이는 네팔에서 교체)

 짐을 다 정리한 상태라 짐만달고 출발하면 됐는데, 그대로 뻗고 말았다. 한숨을 자고나서는 그 가게에 다시가서 짐받이를 달라고 했다. 가격은 118원(15,000원정도)이다. 원래 달려있었던 짐받이는 최대하중 15kg이었는데 이건 25kg 짜리다. 권장무게이긴 하지만 10kg나 더 견딜 수 있는 것이니 훨씬 맘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믿음직한 짐받이에 짐을 싣고는 우한을 벗어났다. 4일동안이나 쉬어서인지 페달질이 가벼웠다. 대도시권이라 도로도 양호했다. 이틀을 이상없이 신나게 주행했다. 그러던 아침, 매일 반복되는 출발. 포장상태양호, 가로수상태 매우양호, 차량통행량 양호, 몸상태 양호 등등 거의 모든조건이 양호한 상태. 아침밥도 양호하게 먹었겠다. 속도를 냈다. 보통 이렇게 양호한 도로에서는 25~30km/h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식당이 눈에 띄어 차오미엔(볶음면) 한그릇 하곤 또 출발. 잘 가는 듯 했는데, 어디선가 바람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질걱질걱’ 타이어 구겨지는 소리와 ‘기기기깅’ 림(타이어 안쪽 금속부분)이 땅에 닿는소리가 귀에 와 닿았다.

 급하게 자전거를 멈추고는 뒷바퀴를 보니 펑크가 나있었다. 그 상태로 5분은 있었다. 그리고 풍만이(자전거이름, 風MAN-바람의 사나이)와 대화했다.

‘내가 니 왜 골랐는지 아나?’

‘네.. 튼튼해보여서 골랐지요.’

‘근데 니 와그라노? 지금 몇 번째고? 몇일 상간에 이게 무슨일이고?’

‘제가 그런게 아니구요, 새로 바꾼 고무튜브가 말을 안들어서요..’

‘진짜가? 거짓말이면 폐차장 보내뿐다.’

‘성만씨 아니 절 못믿으…’

‘아니!! 이놈이!! 자전거가 왜이리 말이 많노!!’

‘죄송죄송.’

‘한번만 참아보자.. 맞다. 니 잘못이가 튜브 저놈 잘못이제.’

 그 때가 1200km 정도 달렸을 때였는데 아무래도 처음으로 1000km 를 넘게 달려봐서 풍만이가 적응을 잘 못했나보다. 도중에 얘깃거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잘못이었다. 그늘에 가서 짐을 다 풀고 튜브를 갈아줬다. 그리고 펑크난 튜브를 보니 어디에 충격을 받아 펑크가 난 것이 아니라 그냥 찢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어저께 꽉꽉 눌러넣은 공기들이 답답해서 나왔나보다. 펑크난 것이 대만제 튜브라 중국본토 공기랑 마찰이 있었던 것 같았다. 새로운 튜브도 대만제라 공기들을 살살 달래면서 넣긴했는데 말을 잘 들을까 모르겠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