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는 자세를 계속 바꾸었다. 이리 눕고, 저리 누웠다. 돈방 안을 한바퀴 돌기도 했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돼지가 출산하는 장면을 본 적은 없었으나 가만히 누워서 출산할거라 생각했다. 아마도 스톨에 갇혀서 새끼를 낳는 돼지사진을 본 것 때문인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보는게 불편할까봐 다시 일을 했다. 

오후 다섯 시 경, 갸냘픈 비명소리가 들려 달려갔더니 조그마한 새끼가 어미에게 깔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새끼가 태어났다!’라는 기쁨보다 ‘저러다 죽는거 아냐?’하고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조금 뒤 천천히 일어났다. 첫째를 낳고도 자세 바꾸기는 계속 됐다. 젖을 찾아 빨려는 새끼돼지와 자세를 계속 바꾸려는 어미돼지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에크가 여덟마리의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새끼돼지는 어미돼지에 몇 번이나 깔렸다. 새끼가 깔렸다는 건 인지하는 듯 했으나 힘이 들어서 그런지 재빨리 일어나지 못했다. 숨도 어찌나 거칠게 쉬던지 안쓰러웠다. 바깥은 어두워졌고 불을 켜기도 미안해 바로 철수 했다. 출산을 관찰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깔려죽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비켜주는게 어미돼지를 돕는 일이었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축사에 갔다. 새끼들은 모두 여덟마리가 태어나 있었고, 크기가 비슷비슷했다. 건강해보였다. 어미돼지에게 밥을 주었더니 벌떡 일어나 와서 밥을 먹었다. 특별히 미역으로 끓인 죽을 함께 줬다. 산후보양식으로 미역만큼 좋은 게 없다. 밥도 많이 주고, 미역죽도 상당한 양이었는데, 금방 해치웠다. 

초조했던 마음이 그제야 가라앉았다. 압사한 새끼돼지는 없어보였다. 작년 가을경에 숫놈이 암놈 등에 탄 모습은 보았지만, 그 행동은 그 전에도 했었기 때문에 정확한 출산일을 계산하기 어려웠다. 이제와 돼지의 임신기간인 114일을 거꾸로 올라가보니 11월 3일경이다.

발정이 나면 등에 올라타 짝짓기를 하고, 약물을 주사하지 않은 채, 자유로이 몸을 움직이며 출산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황당하게도 현시대의 가축에겐 매우 드문 일이다. 일반 공장식 돈사에서 수컷이 암컷 등에 올라타는 일은 없다. 발정난 수컷에서 정액을 채취하고, 그 정액을 발정난 암컷 생식기에 찔러 넣는다. ‘우수한 정액’을 다른 곳에서 조달하여 강제수정하기도 한다. 

출산 때도 자유는 없다. 꼼짝달싹 못하게 만든 분만틀(스톨)에서 인공호르몬으로 만든 분만촉진제 주사를 맞고 사람이 정해준 때에 출산한다. 주입된 인공호르몬은 자연스레 분비되어야 할 호르몬들을 교란시킨다. 태어난 새끼들은 어미가 아닌 사람이 먼저 손을 댄다. 어미와 새끼 간의 교감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새끼가 젖을 먹는 기간에도 어미돼지는 내내 갇혀서 누워 있을 뿐이다. 

둥지를 틀고 있는 돼지. 최대한 안락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모돈칸은 가로 3.5m, 세로 4m로 4.2평정도다. 스톨에서 해방되는 것, 그 이상으로!
원목 칸막이는 등긁게로 안성맞춤이다.
모돈칸은 총 여덟칸이다.

우리는 돼지농장을 시작할 때부터 공장식 양돈과 완전히 다른 곳을 원했다. 특히나 두 아이 모두 집에서 출산한 아내는 모돈칸의 독립되고 편안한 공간을 제일 강조했다. 그랬기에 출산&산후조리실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이 많았다. 어미돼지가 스트레스 받지 않고 건강해야 새끼돼지들도 건강하게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행복하게’를 모토로 삼은 우리 농장에서 최우선 과제가 모돈칸의 안락함인 셈이다. 크기는 세로 4m, 가로 3.5m로 4.2평 정도다. 자연방목까지는 못 해주더라도 최대한 어미돼지가 부족함 없이 움직이길 바랐다. 바닥은 톱밥을 충분히 깔고 그 위에 볏짚이불을 덮어주었다.

그 다음은 칸막이가 마음에 걸렸다. 돼지들이 스트레스에 약한 편인데, 분만을 앞둔 어미돼지의 시야를 가려서 안정감을 주고, 작은 새끼돼지들이 다른 칸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틈을 메울 필요가 있었다. 어떤 자재로 칸막이를 만들지는 축사의 첫 삽을 뜨는 순간부터 고민했다. 편안해야 할 장소에 차가운 금속재질은 영 내키지가 않았다. 심리적 안정을 위해선 ‘주위를 둘러싼’ 소재도 따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생각한 것은 대나무발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보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돼지를 키우다보니 며칠이면 다 뜯어먹을 게 분명했다. 대나무발은 탈락. 그 다음은 피죽이었다. 제제소에서 나무를 켜고 남은 나무껍질부분이다. 편안함을 주기에 이것만한 게 없을 것 같지만 두께가 들쑥날쑥해 시공문제가 걸렸다. 피죽도 탈락. 이후로 폐 나무파렛트, 합판 등을 떠올렸으나 모두 불합격이었다. 

남은 건 원목 판재였다. 가격이 문제였지만 막상 제제소에서 견적을 내보니 해볼만한 가격이었다. 바로 결정하고 주문했다. 받아온 나무를 철제 울타리에 자르고 붙이는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한 칸, 한 칸 완성이 될 때마다 안락하게 변해가는 모돈칸을 보니 이렇게 하길 잘했다고 수도 없이 감탄했다. 

칸막이 작업을 마치던 날, 완성된 모돈칸에 어미돼지들을 바로 옮겨줘야겠다 생각하고 종돈칸으로 다가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오전까지 괜찮던 에크가 둥지를 만들고는 그곳에 털썩 누워서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아내가 출산할 때 두 아이 모두 내가 받았기 때문에 감이 왔다. 에크도 출산이 임박한 것이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움직이기 싫다고 “꿀꿀”하며 화를 내는 에크를 겨우 모돈칸으로 옮겼다. 볏짚으로 바로 둥지를 만들더니 털썩 누웠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첫째 돼지를 출산했다. 마치 시간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공사 마무리와 동시에 출산이 이루어졌다.

아기돼지들은 하루가 지난 뒤부터 뛰어다니며 놀았다.
볏짚을 헤치며 뛰어가는 아기돼지.

원목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지, 출산할 때 안정감을 주었는지 당사자의 소감을 묻고 싶었다. 아니, 인간의 언어로 물어보기는 했다. 다만, “꿀꿀”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서로 언어가 달라서 돼지의 마음은 알지 못한다. 아쉬웠다.

8마리의 새끼돼지들은 폭신폭신한 톱밥 위를 뛰어다니며 코로 장난을 쳤다. 불과 하루만에! 어미돼지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땅을 팠고, 돌아다녔다. 원목 울타리는 등을 긁기에 딱이었다. 새끼와 어미 모두 편안해 보였다. 건강하게 산후조리하는 모습을 보니 그간의 고민과 힘들었던 작업이 뿌듯했다. 뭉클했고, 한없이 고마웠다. 

사는 동안만이라도 쾌적한 공간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 우리 농장이 할 일이다.

이 글은 한겨레 애니멀피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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