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떼기 전 어미돼지와 한 컷

‘꿀.꿀.꿀.꿀….’ 빠른 박자의 ‘꿀’ 소리가 들렸다. 어미가 새끼들을 호출하는 소리다. “젖먹어 얘들아.” 자리를 잡고 누우면 새끼들이 자기 젖꼭지를 찾아 비집는다. 젖꼭지를 물고 흔드는 동안 ‘꿀’소리는 점점 빨라진다. 새끼들도 가늘지만 크게 소리를 지른다.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때는 큰 일이 난 줄 알고 뛰어가기도 했다. 실제로 젖이 나오는 시간은 불과 14초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니, 잠깐 딴청을 피우게 되면 젖을 못먹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사람도 그렇지만 계속 빨아야 젖이 생기는데, 새끼들 젖빠는 힘이 다 다른지 어미의 젖 크기도 다 제각각이다. 아마도 가장 큰 젖이 가장 큰 놈의 젖일 테다.

수유는 약 40분 간격으로 한다. 내가 늘 지켜봐서 아는 건 아니고, 성실한 연구자들이 관찰해보니 그렇다고 한다. 밤에는 수유간격이 길다고 하니 하루동안 대략 서른 번의 수유를 하는 것이다. 제일 처음 출산한 ‘에크’역시 그렇게 젖을 먹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체구가 작아졌다. 얼핏보면 7~8개월령 돼지크기만 하다. 

수컷돼지 사료 양의 두 배 이상을 주었지만 ‘에크’를 살찌우진 못했다. 계속 야위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농장에서 모돈의 역할은 – 안타깝지만 – 임신과 출산이다. 계속 살이 빠진다면 임신을 할 수 없게 되고, 농장 안에서의 역할이 사라져버린다. 마냥 두고볼 수 없어서 두 달정도 젖을 먹이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한 달 반에 젖을 떼기로 결정했다.

관행양돈에서는 보통 3주, 길게 먹이는 곳은 4주다. 우리는 6주를 먹인 셈이니 짧지는 않았다.(고 위안했다) 딱 한달반이 되던 날, 아내 유하와 함께 새끼들을 분리하기로 했다. 먼저, 어미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했는데, 너무 쉬웠다. 문을 연 순간, 새끼돼지들을 뒤로하고 호기심을 채우러 냅다 나가버렸다. 모돈칸 복도를 오가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렸다. 자돈방과 붙은 방 문을 열어주었다. 그 안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지 금세 들어가버렸다.

겁 있는 돼지들은 어미돼지 옆에 있으려했고, 겁 없는 돼지들은 호기심을 채우러 돌아다녔다.

반면에 새끼들은 두려움이 가득했다. 호기심이 발현될 여지가 아예 없었다. 매일같이 밥을 주는 나였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늘 그랬고, 이날도 역시 그랬다. 구석에 모여서 벌벌 떨었다. 문을 아주 활짝 열어놓고 문 밖으로 밀어내려해도 절대 나가려하지 않았다. 약간 힘을 써야했다. 가장 큰 녀석이 문 앞을 지날 때 슥 밀어서 복도로 내보냈다. 서열이 높았는지 그 녀석을 따라 다섯 마리가 나섰다. 남은 건 두마리. 어떻게 쫓아도 방 안을 빙글빙글 돌 뿐이었다. 결국 한 마리를 잡아서 복도 중앙에 내려놨더니 나머지 한 마리는 자동으로 따라나왔다.

자돈(대략 몸무게 30kg까지)방은 모돈 칸 복도 끝 문으로 나가면 있다. 6m x 10m 크기다. 옆 방에 있던 새끼돼지 한 마리도 함께 나가 총 9마리가 그 방으로 함께 갔다. 그곳에서 몸무게가 30kg정도가 될 때까지 생활하게 된다. 어미랑 바로 떨어지면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서 자돈칸 바로 옆에 어미를 데려다 놓았다. 그랬더니 내가 나타날 때마다 새끼들은 어미 앞으로 달려가기를 반복했다.

어미가 계속 약해져서 새끼들을 떼어놓았지만, 새끼들 중에는 더 약한 녀석도 있었다. 두 마리 정도는 제일 큰 녀석 대비 반 정도의 크기밖에 안됐다. 아무래도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것 같았지만 경험과 지식이 미천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행히 한 마리는 물도 잘 먹고, 밥도 잘 먹었다. 불행히 다른 한 마리는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더 행동이 느려졌다. 키가 작아 물을 제대로 못먹나 싶어 물통을 갖다놓아도 별 반 다르지 않았다.

한 번은 강제로 잡아다 물을 떠먹여 주었다. 그러는 와중에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를 듣고 다른 돼지들도 흥분을 했다. 스트레스가 더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그냥 놔 주었다. 그러길 며칠, 젖 떼고 5일 째가 되던 아침에 그 녀석은 팔다리를 뻗은 채 죽어있었다. 미안함이 밀려왔다. 문 앞에서 잠시 묵념했다. 나름대로 격식을 차리느라 두 손으로 떠받쳐서 산으로 올라갔다. 가장 해가 잘 드는 곳을 골라 묻어주었다. 그리고 또 묵념했다. ‘잘 가거라’

내가 한 잘못을 발견하기 위해 자료를 뒤졌다. 아무래도 어미의 젖을 먹을 때 제대로 영양을 받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한달 반이 지났는데도 그 크기일 리가 없었다. 미역죽을 매일같이 끓여줘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1구짜리 전기버너(하이라이트)를 주문했다. 미역도 직거래로 바로 주문했다. 사람이든 돼지든 산모에겐 미역이 최고일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다) 설령 죽더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만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물도 먹고, 사료도 먹었다.
내가 앉아있으니 당황한 새끼돼지

다른 일반농장은 어떤가 하고 찾아봤더니 젖 떼기 전에 10%, 젖 떼고 난 뒤를 포함하면 총 20% 가량의 새끼들이 죽는다고 한다. 한국 평균이 그렇단다. 새끼들이 깔려죽지 않게, 어미와 새끼 관리 잘 하기 위해 설치하는 스톨도 의외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덴마크 같은 ‘양돈 선진국’은 그런 기술을 활용해 어미 한 마리당 1년동안 30마리를 출하하기도 한다. (한국은 약 18마리)

남은 새끼들은 다행히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았다. 물꼭지도 잘 썼고, 밥먹는 양도 서서히 늘어갔다. 가장 큰 걸림돌은 나였는데, 인기척을 느낄 때마다 후다닥 구석으로 도망갔다. 나는 그들에게 스트레스였다. 스트레스는 건강에 걸림돌이다. 그래서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자돈방에 들어가 퍼질러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손가락을 내 주었다. 두 세마리가 슬금슬금 다가와 깨물고 달아나기를 반복했다. 몇 번 그렇게 장난을 받아주었더니 드디어 나를 본체만체했다. 성공이다. 

자돈시기(30kg)와 육성시기(50kg)는 돼지 사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약 50kg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데, 그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태어나고 젖먹이는 건 어미가 다 했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돼지들의 건강이 결정될 것이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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