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마을인 드람에서 이틀을 보냈다.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좋은 분위기 때문에 더 머물러도 좋았을 테지만 새로운 세상 ‘네팔’을 코앞에 두고 계속 뭉그적거릴 수는 없었다. 상과 류도 다음 목적지가 네팔이었지만, 그들은 비가 그치면 가겠다고 얘길했기에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넘는 육로국경이기에 다소 걱정했다. 자전거에 실린 짐도 너무 많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동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팔비자도 미리 만들었어야 했지만 국경에서 만들면 된다는 그 말 하나 때문에 그냥 아무렇지 않게 드람에 갔다.

티베트 - 네팔 국경도시 드람.
저 손으로 쓴 팻말을 지나가면 네팔이다.
반대쪽 중국 국경은 조금 더 그럴싸하다.

그런데 네팔비자를 만들 수 있는 사무실은 눈씻고도 안보였다. 그래서 그냥 부딪혀 보기로 하곤, 첫 번째 티베트측 국경사무소를 들어갔다. 여권을 살펴보고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었다. 세관은 더 간단히 손을 흔들며 지나가라는 것이 일이었다. 네팔을 입국할 수 있는 네팔비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자기들 소관이 아니었다. 내가 네팔에 갔다가 쫓겨나기라도 하면 다시 중국으로도 돌아올 수 없는 것인가! 아니!! 그렇게 간단할 수가!!

바로 네팔 사무소가 있는줄 알았지만 못해도 수직고도 500m는 아래쯤 떨어져 있었다. 그 길은 비포장 도로로 몇일사이의 폭우로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8km쯤 됐는데 그 길을 한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마치 고도로 국경을 나누는 것 같은 느낌.

‘우정의 다리’라는 것으로 티베트와 네팔이 나뉘어져 있었다. 이쪽은 황당하고 화려하게 ‘CHINA’라고(티베트인데도) 적혀져 있었고, 저편은 자그마한 합판에다 ‘WELCOME TO NEPAL’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너무나 극명한 차이에 입은 한동안 벌어져 있었다.

수많은 네팔인파와 빼곡이 도로를 채우고 있는 트럭들 사이로 겨우 빠져나와 국경사무소를 찾았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한 조그만 국경사무소. 들어가서 별 얘기도 하지않았는데 긴장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비자신청서를 한 장 내 주는 것이었다. 그것을 제대로 채우지도 못하고 사진 두장과 여권, 비자비 2600루피를 함께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뭘 붙이고 도장찍고 사인을 하더니 아저씨는 뜬금없이,

“Welcome to nepal”(환영합니다.)
“thanks. how to say thank you in nepali ?”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표현을 네팔어로 어떻게 하죠?)
“다네밧“
“아, 다네밧”
“how to say thank you in korean?”(인사를 한국어로 어떻게 해요?)
“안녕하세요?“
따라하려고 몇 번 헛소리를 하다가 결국,
“please write down here”(여기 적어주세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한글과 로마자로 적어주었다. 그는 나에게 고맙게도 우리말로 인사를 했다. 물론 나는 ‘다네밧’하고는 인사하고 나왔다. 끝이었다. 10분이나 채 걸렸을까.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절차가 그렇게 간단할 수가 없었다.

네팔의 첫 마을. 다른 나라로 넘어온 게 실감났다.

마지막 티베트 마을 ‘드람’과는 완전하게 틀린 분위기였다. ‘드람’은 중국침략 이후로 많은 부분이 새롭게 바뀌었는지 콘크리트 건물이 가득한 중국마을인 것 같았다. 반면에 네팔 국경마을 ‘코다리’는 나무로 지은 집들로 가득했다. 딴에는 수백미터 내려왔다고 열대야자나무도 많이 심어져 있었고, 나무들도 잎들이 넓은 것이 많았다. 마을 옆으로 지나가는 계곡은 우기답게 큰 소리를 거칠게 울려퍼트리며 흐르고 있었다.

조그마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식당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시장도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길가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행인들도 많았다. 인도풍의 생김새를 가진 눈매가 무서운 아저씨들도 많았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화려한 사리를 입은 여성들도 많았다.

네팔글자는 한자나 티베트어와는 완전 틀리게 포도 넝쿨에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자가 적혀져 있는 중국이나 티베트에서는 그나마 글자로 소통이 가능했는데, 글자로는 소통이 아예 불가능해 보였다.

천천히 길을 가며 쳐다보는 사람들에겐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고개를 좌우로 희한하게 흔들었다. 마을을 빠져나오며 어떤 여성이 소리를 쳤다.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바지를 추스르며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집 옆에 용변을 보고 있는데 내가 봤으니 호통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보지 않았는 걸.’

지나다니는 버스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길이 비포장에 가깝고 계곡쪽으로는 절벽이라 갸우뚱대는 버스가 그토록 불안해보일 수가 없었다. 나와 비켜서기 할 때는 불안하여 길 안쪽으로 바싹 붙어 지나갔다.

어마어마한 비포장길. 자칫 잘못하면 낭떨어지로...

도로 옆으로는 조금의 틈도 용납지 못할만큼 빽빽하게 수풀이 형성되어 있었다. 계곡과 협동하여 어찌나 맑은 공기를 많이 뿜어내던지 다음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 상쾌함이 극치를 이루었다. 티베트 비포장도로를 넘어오며 혹사한 자전거 앞쪽 짐받이가 부러져 버렸지만 그 정도 일로는 상쾌함을 꺾을 수도 없었다.

배가고파 식당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드람에 있던 네팔 청년에게서 배운 네팔말을 사용했다. 배고프다는 뜻이니까 배고플 때 식당에서 사용하라고 했었다. 그러면 알아듣고 밥을 줄 것이라고. 그래서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아저씨에게 얘기했다.

“워글라유”

그랬더니 밥을 줄 생각은 안하고 “우하하!!” 배꼽잡고 뒤집어지는 것이었다. 특히 주변의 꼬마들이 몰려와서는 또해보라고 계속 재촉을 했다. 다시한번 했더니 테이블까지 두드려가며 재미있어 죽겠단다. 수상하다 싶어서 그 말을 그만두고,

“I’m hungry, want to eat something”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말을 알아듣고, 가장 보편적 음식인 ‘달밧’을 가지고 왔다. 닭을 삶은 것도 있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워글라유’의 정확한 뜻을 밝히지 못했지만 배고프다는 뜻 이외에 황당한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Barabise’라는 마을에서의 첫날밤은 여행 떠나기 전날밤보다 더 두근거리는 밤이었다.

네팔의 첫 숙소에서 내려다 본 풍경
강변에 세워진 네팔 풍? 건물들.

<달려라 자전거>는 2006년 6월부터 2007년 9월까지 432일동안 유라시아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은 그 때 당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지금의 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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